말·말·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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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고기는 씹어야 맛, 말은 해야 맛이라 한다. 하지만 많은 말은 핵심을 놓치고 초점이 흐려 산만하다.

그게 탈이다. 다변은 달변이 아니다.

최순실 사태로 세상이 말잔치 판이다. 특히 종편은 현하지변(懸河口辯)으로 종일 현란한 말들을 쏟아 낸다. 드라마로 시청률 경쟁을 벌이더니 장르가 바뀌는가.

출연자도 거의 판에 박은 얼굴들, 그 나물에 그 밥 어슷비슷한 말들에 잔뜩 도취해 있다. 외화내빈(外華內貧), 그들의 말은 귀에 허해 이제 식상하다.

현실에 대해 피카소의 추상을 그릴 뿐, 정선의 진경산수화 같은 실사구시가 아니다. 수습에 대한 처방전 같은 명시적 제시 없이 변죽만 울린다.

보통의 경우, 아이도 현실 속의 사물을 먼저 인지하고 나서 말을 배운다.

‘앞의 구체적인 꽃 한 송이→ 꽃이란 말→책 속의 그림과 글자 꽃→하나의 원형으로서의 꽃’. 이런 식의 이월(移越) 내지 확장을 경험하게 된다. 명징(明澄)한 구체적 사물과 모호한 말 사이 간극을 좁히며 추상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우리는 ‘성장’이라 한다.

“내게는 관념이 먼저, 더구나 사물로서 주어졌다. 내가 세계를 만난 것은 책을 통해서였다.”

사르트르가 ‘말’에서 한 말이다. 사물보다 관념이 현실적일 수 있다.

패널들은 현실과 말 사이 간극을 못 좁힌 채, ‘말’의 본질을 떠나 표류하기 일쑤다. 작금의 상황에 대한 분명한 출구가 없다.

막말이 춤을 춘다. 100만 민심을 비하해 “촛불은 결국 바람이 불면 꺼진다”라 하자,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지는 게 아니고 바람에 옮겨 붙는 것”이라 맞받는 말. 에둘러 가며 주고받는 기막힌 수사다.

지난 19일, 서울에서 제주까지 온 나라에 촛불이 넘실댔다. 분노한 민심이 촛불로 밤을 밝혀도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더 번져 들불로 타오를 기세다. 공인(公人)이, 확인되지 않은 정보로 계엄령 운운해 사회 불안을 부추기기도 했다.

헛발질이라 했듯 너무 단세포적이었다. 말은 책임이다.

청와대는 국정 중단이 큰 혼란을 부른다며 국정운영을 재개하고 있다. 그러자 촛불에 기름을 붓는다며, 집회가 과열양상으로 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그렇지 않았다.

시민들의 시위는 외려 비폭력으로 성숙해 참 평화로웠다.

검찰이 수사결과 발표로 대통령을 국정농단의 공범이라 규정하면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청와대는 검찰 수사를 일절 받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격살인이라며 전면전을 선포한 셈이다. 특검으로 갈 테니 탄핵하라 정치권에 승부수를 던졌다.

야권도 급기야 대통령을 탄핵하는 쪽으로 가닥 잡아 가는 모양새다.

긴박한 상황 속으로 말들이 쏟아진다. 대통령이 결단하면 명예로운 퇴진을 돕겠다고 한 어느 분의 말이 귀에 거슬렸다.

벌써 무슨 자리에 오른 것처럼 하는 말로 들린다. 민망했다. 향후의 변수가 가져올 유·불리에 주판알을 튀기는가. 진정 나라를 위한다면, 민심의 분노를 등에 업지 말고 앞장서야 하리라.

나라가 말·말·말·말들로 난장(亂場)이다. 말만 무성하고 말 속에 명백한 지향이 없다. 국민들은 정치권의 분명한 해법을 갈망하고 있다.

키잡이 없이 나라가 떠내려가는데, 말잔치는 이제 그만뒀으면 좋겠다. 말은 때로 재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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