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보 전 제주지방법원장은 법원의 문턱을 낮추고 도민들과의 소통을 강화하는 데 역점을 두고 사법행정을 추진했다.

김창보 전 제주지방법원 법원장은 대법관 후보로 두 번이나 추천될 정도로 법원 내·외부로부터 신망이 두터운 법관이다.

 

그는 2014년 2월 고향 제주에서 법원장으로 취임하면서 “도민들로부터 신뢰받고 사랑받는 법원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할 만큼 법원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면 존립 이유가 없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김 전 법원장은 제주에 근무할 당시 “도민과 동떨어진 법원은 존재 이유가 없다. 법원이 사법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국민으로부터 위임이 있기 때문이며, 그 권한을 위임한 국민이 법원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설 자리가 없다”라는 말을 늘 강조했다.

 

▲배구를 좋아하던 소년 서울대 법대에 진학하다=김 전 법원장은 1959년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에서 2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납읍초등학교를 다닐 당시 키가 큰 편이어서 배구선수를 했고, 전도체육대회에 출전해 준우승을 하기도 했다.

 

그는 “그 때 배구선수를 했던 것이 이후 성장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줬던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애착을 가졌다.

 

애월중학교에 진학했고 2학년 때 만난 담임선생님은 그에게 큰 감화를 줬고,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담임선생님이 부모님을 설득해 제주시로 전학을 하게 됐고, 마침 제주시에서 자취를 하던 누나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생활했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주말에만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만날 수 있었고, 농사일로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어떻게든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해야겠다”는 강한 집념을 가졌다.

 

김 전 법원장은 “당시 예비고사(현재 수능)를 얼마 앞두고 쓰러질 정도로 공부에 몰두했고, 결국 서울대 법대에 입학 할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서울대 법대에 진학한 그는 현실 참여와 도피 사이에서 많은 번민과 갈등을 겪었다.

 

유신 말기와 5공화국 초기였던 당시 대학에서는 시국 관련 격렬한 시위와 무자비한 진압으로 전쟁터와 같이 살벌했고, 늘 최루가스가 캠퍼스를 뒤덮고 있던 암울한 시기였다.

 

김 전 법원장은 “대학생활의 낭만은 사치스럽게 느껴졌고 개인적인 포부와 꿈, 이상을 생각하는 것조차 부끄러워해야 했던 때였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 걱정하시는 모습을 떠올리며 사법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공부에 매진했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그는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관의 꿈을 이루게 된다.

 

   
▲ 김창보 전 법원장(사진 왼쪽서 다섯 번째)은 제주지방법원장으로 2년간 근무하는 것이 영광이면서도 보는 눈이 많아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다. 사진은 2014년 6·4지방선거 당시 제주도지사와 제주도교육감 후보들과 매니페스토 정책선거 실천 협약식 모습.

▲판사 생활 시작…고향 제주서 법원장으로 꽃 피우다=1982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사법연수원에서 2년간의 연수과정을 마친 뒤 군법관 생활을 했다.

 

1988년 3월 판사에 입관돼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서울민사지방법원, 제주지방법원 등에서 12년간 평판사로 근무한 뒤 2000년 2월 제주지방법원 부장판사로 발령받아 근무하는 등 7년간 지방법원 부장판사로 근무했고, 2007년 2월 고등부장판로 승진해 수원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등을 거쳐 2014년 2월 제주지방법원장으로 발령받아 2년간 근무했다.

 

제주지방법원장으로 부임한 것에 대해 그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제주에서 3번째 근무하는 것이고, 더구나 고향에서 기관장으로 근무하는 것이어서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었고, 기쁨도 컸지만 한편으로는 잘 해야 된다는 부담감도 많았다”고 말했다.

 

 

더구나 제주 출신 인사가 법원장으로 온다고 지역 언론에서 크게 보도하고 관심을 갖는 것 같아 더더욱 잘 해야 된다는 각오를 다졌다.

 

그는 “다행히 지역사회에서 많이 감싸주고 응원해주신 덕분에 대과 없이 임기를 마무리 할 수 있어서 참 다행스럽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며 도민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어 “제주법원을 지역사회로부터 가장 신뢰받고 존중받는 기관으로 만드는데 목표를 두고 사법행정을 추진했고, 법원의 문턱을 낮추고 도민들과의 소통을 강화하는데 가장 큰 역점을 뒀다”고 말했다.

 

김 전 법원장은 실제 제주법원장 재직 당시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망라한 시민사법위원회를 출범시켜 지역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고, ‘섬 속의 섬’ 주민들의 편의를 위한 ‘찾아가는 법정’ 프로그램, 제주도와 업무협약을 체결해 이혼위기의 가정에 대한 의무상담제도 등을 시행했다.

 

   
▲ 김창보 전 제주법원장은 도서지역 주민들의 편의를 위한 ‘찾아가는 법정’프로그램, 이혼위기 가정에 대한 의무상담제도 등을 시행했다.

▲제주의 미래에 대한 조언=김 전 법원장은 환경에 관심이 많다.

 

그는 법원 내부 연구회인 환경법연구회에 가입해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고, 환경 전담 재판부 재판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제주지역 개발과 관련해 “제주도의 가치는 수려한 자연환경과 독특한 역사·문화적 유산에 있다”며 “이를 잘 보존하고 잘 가꿔서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활용하는데 정책의 주안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연환경은 한 번 파괴되면 원상회복이 쉽지 않다”며 “제주도에 부는 개발 열풍이 자칫 제주의 본질적 가치를 훼손해 영영 회복이 불가능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많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또 “장기적인 안목에서 제주도를 어떻게 가꾸고 보존할 것인지 중지를 모으고, 일관성 있게 정책을 추진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전 법원장은 앞으로의 인생 계획에 대해 “판사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판사의 직분이 얼마나 어렵고 무거운 직분인지 잘 몰랐고 오래 하면 할수록 정말 어렵고, 무겁고, 고독하고, 어떤 사명감 없이는 견디기 힘든 직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아직까지는 다른 선택을 생각해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으로서는 내게 주어진 현재의 직분에 충실하면서 얼마 남지 않은 법관생활을 잘 마무리해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제주에서 생활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제주에서 직장을 가지고 계속 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복 받은 일인지 제주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자주 이야기 했다”며 “제주는 정말 좋은 곳”이라며 마무리했다.

 

김대영 기자

kimdy@je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