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한말인 1900년대 썰물 때의 산지항(건입포) 전경. 당시 작은 마을포구였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산지항은 일제강점기 이후 제주의 관문이자 개항장으로 거듭나면서 제주항의 모태가 됐다.

산지천이 바다로 흘러가는 하류에 있던 산지항은 원래 작은 포구였고, 예로부터 ‘건입포(建入浦)’라 불려왔다.

기록에 따르면 산지항(건입포)의 항만 건설은 1735년 김정 제주목사(1670~1737)에 의해 시작됐다.

당시 전 도민을 동원해 방파제 80간(80間=145m)을 조성하고 내제(內堤·제방)를 쌓았다.

그런데 조선시대 2대 포구는 수심이 깊었던 화북포와 조천포였다. 이들 포구가 조선시대에 관문 역할을 했다.

그래서 김정희·송시열·최익현 등 유배인 대다수가 화북포로 들어왔다. 제주에 부임하고 이임하는 관리들과 조공선이 수시로 드나들던 조천포는 ‘관포(?浦)’라 불리며 위상이 높았다.

산지항은 협소하고 비교적 수심이 얕았다. 한 예로 명성황후 시해(을미사변) 음모를 알면서도 방관했다며 탄핵을 받은 김윤식은 1897년 종신 유배형에 처해졌다.

김윤식은 인천에서 증기선을 타고 산지항에 도착했으나 산지항이 협소해 증기선은 해변에 대고 종선(從船·보트)으로 상륙해야 했다.

   
▲ 1920년대 일제가 신지항 축항공사를 벌이는 초창기 모습. 방파제 건립 공사가 한창이다.

일제는 산지항이 항구로서 여건이 적합해서가 아니라 도청(島廳) 소재지라는 상징성과 배후 시가지를 고려해 제주의 대표 관문으로 개발했다.

일본인 우에다 코이치로는 ‘제주도의 경제’(1930년 발간)에서 산지항에 대해 “제주의 중앙에 위치하고, 바로 뒤 성안을 두고 있지만 결코 좋은 천연항이 아니며, 풍랑에 무방비로 노출된 평탄한 항구다. 그러나 도청(島廳) 소재지인 이 항구가 명실 공히 제주도의 정면 현관으로 삼을 필요가 있어 축항공사를 착수하게 됐다”고 밝혔다.

일제는 국비 15만원, 지방비 6만원, 민간자본 9만원 등 총 30만원(현재 화폐가치 150억원)을 들여 항만 공사에 돌입했다. 1차 공사는 1926년 12월 16일 착공했고, 1927년 5월 개항했다.

공사는 3단계에 걸쳐 계속 진행됐고, 최종 공사는 1929년 3월 31일 마무리됐다. 콘크리트를 타설해 서방파제 580m, 부두 야적장 361m, 안벽(접안시설) 100m가 축조됐다.

이 항만은 현재 관공선 및 어선 전용부두로 이용하는 제주항 서부두의 시초가 됐다.

일제는 산지항을 만들기 위해 백성들이 한 돌 한 돌 피땀으로 쌓은 제주성 성곽 3분의 2를 허물어 바다를 매립하는 골재로 사용했다.

   
▲ 1948년 미군이 상공에서 촬영한 산지항(제주항) 전경. 왼쪽에 주정공장 모습과 항구에 미군 LST함정이 정박해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방파제가 뻗어나가는 동안 성담은 바다에 매립돼 제주성은 자취를 감추게 됐다.

일제는 또 전쟁 물자인 연료를 확보하기 위해 1943년 건입동에 주정공장을 설립했다. 이곳에선 고구마를 원료로 95% 농도의 무수주정(無水酒精·알코올)을 생산해 항공 연료로 일본군에 납품했다.

일제는 알코올을 실어 나르기 위해 항만 확장공사를 벌였다. 주정공장 설립은 오늘날 제주항 동부두가 들어선 배경이 됐다.

산지항이 항구다운 면모가 갖춰지면서 제주~오사카를 오가는 국제 여객선이 잇따라 취항했다.

한편 제주성 성곽이 해체되면서 관청이 밀집한 관덕정 광장과 산지항을 연결하는 최단거리 도로인 북신작로가 개설됐다. 또 원정로와 칠성로가 잇따라 뚫리면서 성굽길은 새로운 도로로 대체됐다.

산지항은 개항장이자 일제가 제주를 식민지화하려는 교두보가 됐다. 일제는 기와가 얹혀있던 전통한옥인 찰미헌(판관 집무실)을 자혜의원으로, 영주관을 공립보통학교로 사용했었다.

그런데 산지항을 통해 시멘트와 벽돌 등 건축자재가 반입되자 한옥 관청 건물을 허물고 서양식 청사로 신축했다.

역사의 어두운 그늘 속에 산지항에서 태동한 제주항은 올 들어 10월까지 409번째 크루선이 입항해 사상 처음 크루즈 관광객 100만명을 돌파하는 주역이 됐다.

또 지난해 기준 전체 항만 물류 1577만9782t 중 71%(1120만4000t)를 처리하는 도내 최고의 항구로 자리매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