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2~1945년까지 산지항과 일본 오사카 항로에 취항한 군대환(君代丸·기미가요마루) 여객선.


산지항이 개항장으로 열리자 일본 오사카상선주식회사는 제주~오사카 항로에 570명이 승선할 수 있는 정기 여객선 군대환(君代丸·기미가요마루)을 취항시켰다.

군대환은 러일전쟁 때 러시아해군으로부터 빼앗은 전리품을 개조한 배였다.

군대환은 1922~1945년까지 운항했고, 군수산업이 발달한 오사카에 많은 도민들을 실어 날랐다.

이에 대항해 오사카에 거주하는 제주도민 고순흠·김문준·문창래·김달준 등은 ‘우리는 우리 배로’라는 표방 아래 1만 여명의 조합원을 모아 1930년 동아통항조합(조합장 문창래)을 결성했다.

그해 영국제 강철선을 인수해 800명이 승선할 수 있는 1300t급 복목환(伏木丸)을 제주~오사카 뱃길에 취항시켰다.

민족자본으로 운항한 복목환 여객선은 군대환(12원)보다 절반가량 저렴한 6원의 배 삯을 받았다.

그러자 경쟁관계에 있던 군대환은 덤핑에 나서 운임을 3원까지 낮췄다. 이로 인해 자본이 부족한 상태로 출발한 복목환은 많은 적자를 봤다.

1931년 12월 1일 취항한 복목환은 1932년 4월 배가 좌초되는 사고를 당했다.

오사카 거주 조선인들은 수리비용을 위해 모금운동에 나섰다. 그러나 거액의 부채로 경영이 악화되고, 일제의 탄압으로 조합원이 줄어들면서 출항 3년만인 1933년 12월 운항을 중단했다.

정기 항로 개설 2년 후인 1924년 오사카기업보도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1004명의 조선인 중 제주 출신이 609명으로 60%를 차지했다.

정확히 10년 뒤인 1934년까지 약 5만명의 도민이 오사카 등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는 당시 제주 인구의 25%에 달하고 있다.

생계를 위해 오사카로 이주한 도민들은 광부·잡부·세탁부와 막노동·행상 등을 하며 삶의 터전을 잡았다.

현재 오사카에는 1세대 재일 제주인과 그 자손 등 8만5000여 명에 살고 있다. 특히 이쿠노구(區) 츠루하시는 ‘일본 속의 제주’라고 불릴 정도로 언어와 음식 등 생활 속에서 제주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