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춥다, 춥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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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집에 작은 정원이 있다. 그나마 읍내라서 내게 허여된 공간인데, 퍽 유의미한 곳이다. 무료하면 이곳을 서성이며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글의 결말을 짓기 위해, 소재와의 해후를 위해. 기분이 달떠 환호할 때도 있다. 우스운 얘기일지 몰라도 이게 내 좌와기거 중 잘 길들여진 방식이다.

그렇다고 나를 방임(放任)하는 게 아니다.

현실에서 이월해 외연을 넓히려는 무모한 확장에의 의지도 아니다.

더 그윽한 곳으로 침잠하려는 장치일 뿐이다. 나만의 본령(本領)에 충실하려는 바람에서 이런다.

창작의 공간이고, 밖을 내다보는 창(窓)이다.

오관을 기울여 나무에게 다가선다. 소설(小雪) 뒤면, 으레 눈이 머무는 게 낙엽수다.

감나무, 석류나무, 이팝나무, 모과나무, 석류, 자목련…. 그새 거지반 잎을 내려놓아 발가벗었다. 남루 하나 걸치지 않은 나상(裸像)이 을씨년스럽다.

어쩌자고 저렇게 벗어 겨울을 나려 함인가.

가만 살피거니, 그냥 나무들이 아니다. 하안거 해제 하고 막 동안거 결제를 목전에 둔 눈 맑은 스님들 같다. 화두 하나 참구한다고 결가부좌로 눈 감고 있는 모습이 아닌가.

한데 춥다. 다가온 이 겨울이 참 춥겠다. 첫추위라 그런가. 낯선 추위다. 아직 손발 곱아 모지라지게 하늬 모질지 않았고, 눈발 성성한 적도 없는데 이 웬 추위인가.

두껍게 옷 덧입고 모자 눌러써도 오슬오슬 파고드는 이 한기(寒氣)….

대한민국, 사랑하는 이 나라가 터무니없이 흔들리며 떠 내린다.

뜻밖에 정체불명의 광풍에 휘둘려 몸 오들오들 떨고 있다.

주말마다 이어지는 도도한 촛불의 바다 위로 넘실거리는 분노의 함성, 터져 나오는 절규, 침묵의 처절한 언어. 아, 허아비의 농단에 멋대로 쓸린 나라, 주인인 걸 깜빡 잊었던 선량한 백성들.

병신년, 벽두에 뭔가 뚱한 느낌으로 오던 천간 지지(天干地支)의 불길함.

이 해, 어느새 끝물이다. 어서 가라, 아득히 멀리 역사의 뒤꼍으로 소멸해 버리라.

달랑 달력 한 장 남는다. 해마다 이맘때면 아쉬웠지 이러진 않던 일이다.

이렇게 한 해가 서둘러 떠나가길 종종댔던 적이 있었나.

제발 이 한 해를 말끔히 보내고 정유년이 밝아 오기를, 맑게 씻긴 동살의 서기(瑞氣)가 이 나라 온 누리에 퍼지기를, 애오라지 비손해 빌고 싶을 따름이다.

눈앞의 겨울, 참 춥다, 춥겠다.

추위 속에서도 국민은 활활 촛불로 타오른다. 촛불이 횃불로 번지고 있는 연유를 알아야 하리.

저걸 한때의 풍경이라 마라. 촛불은 국민의 명령의 말이다.

정치권이 촛불의 뜻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여·야라는 담장을 허물고, 이런저런 정치적 셈법에서 떠나 나라를 위해 할 일 앞에 두 손 모으라.

인기를 꾀하거나, 일신의 입지를 염두에 둔 꼼수는 죄악이 된다. 감정적인 말 따위로 허비할 만큼 우리는 여유롭지 않다.

이 나라에 인물이 없다며 가슴 치고 있다.

불세출의 인물은 낙엽수가 잎을 버리듯, ‘나’를 버릴 때 나온다.

나무에게 다가서며 육사의 ‘광야’를 뇐다.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참 춥다, 춥겠다. 그래서 우리는 목마르게, 목마르게 초인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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