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제주의 젖줄에서 문화.예술 꽃피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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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천, 생명수 공급...물 끌어들인 후 수해 빈발하기도
▲ 1950년대 산지천과 산지교 다리 전경. 왼쪽에 중국 피난선인 해상호 뱃머리가 보인다.


산지천은 제주시의 젖줄이자 역사·문화 유적의 향수를 간직한 곳이다.

한라산 북사면 관음사 해발 720m에서 발원한 산지천의 길이는 13.2㎞, 유역면적은 12.2㎢에 이른다.

조선시대 제주성 축성과정에서 산지천은 성 밖에 두었다. 1555년 1000여 명의 왜구가 침략해 성을 포위하자 식수 조달이 어려워졌다.

10년 후인 1565년 곽흘 목사는 식수 확보를 목적으로 성을 동쪽으로 물려쌓아서 산지천을 성 안으로 끌어들였다.

1599년 성윤문 목사는 산지천의 물을 이용하기 위해 남수구와 북수구 2개의 수구(水口)를 축조했다.

수로가 생기면서 사람과 물자 이동을 위해 무지개모양의 돌다리인 홍예문(虹霓門)이 설치됐다.

▲ 1960년대 산지천 하류 산지물에서 아낙네들이 빨래를 하고 있다.

도쿄제국대 건축학과를 졸업, 경성고등공업학교 교수로 있던 후지시마 가이지로 교수는 1925년 제주를 찾은 후 홍예문과 북수구의 미적 건축양식에 감탄해 실측도를 그렸다.

산지천변의 유적은 삼성혈을 정점으로 동쪽에 제주향교·운주당·공신정, 서쪽에 제아각·귤림서원·오현단·중인문이 차례로 들어섰다. 하구에는 남수각·판서정·세심단·광제교 등 유적이 세워졌다.

산지천 주위로 문화 유적이 꽃피운 이유는 하천을 따라 늘 풍부한 물이 솟아 흘렀고, 사유와 휴식, 피서 공간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산지천은 성안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생명수를 공급했다.

중상류에 가락쿳물, 하류에 산짓물, 노리물, 지장깍물, 금산물 등 용천수가 풍부해 상수도가 공급되기 전인 1960년 초까지 식수원으로 이용됐다.

그런데 산지천을 성 안으로 끌어들인 결과, 수재(水災)가 발생해 인명 및 재산 피해가 속출했다.

특히 산지천변 서쪽에 밀집한 민가에서 침수 피해가 컸다. 1780년 김영수 목사는 산지천 서쪽과 민가의 경계에 제방용 성곽인 간성(間城)을 쌓았다.

일제시대인 1927년 8월 7~8일 이틀간에 걸친 대홍수는 산지천의 물길조차 바꿔 버렸다.

곡선으로 약 200m를 동쪽으로 회류하던 물줄기를 거의 직선인 정북 방향으로 뚫어버렸다. 당시 남·북수구와 무지개다리인 홍예문도 허물어져 버렸다.

산지천 하구는 영주십경의 하나인 ‘산포조어(山浦釣漁)’의 무대였다. 버드나무가 드리워지고 오리 떼가 헤엄치는 포구에서의 고기잡이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산지천은 1960년대 이전까지 경승지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런데 하천변에 집이 들어서고 각종 오물이 쌓이면서 도시 미관을 흐린다는 이유로 1966년 산지천 복개 공사가 시작됐다.

1966년부터 1982년까지 16년 동안 9차례에 걸쳐 동문로터리에서 용진교에 이르는 660m를 복개해 1만6122㎡의 구조물을 세운 뒤 그 위에 동문시장과 상가 등 17개동 건물과 286가구가 들어섰다. 

복개 공사는 최악의 상황을 불러들였다. 복개 공간 밑으로 오물 투기 및 하수 방류로 산지천은 제주의 대표적인 오염지대로 전락했다. 더구나 복개 구조물은 붕괴 위험마저 따랐다.

▲ 산지천 복원공사에 이어 탐라문화광장 조성사업 일환으로 도심 생태하천으로 거듭난 현재의 모습.

1997년 건물 소유주와 세입자의 시청 점거 농성과 시위 등 진통 속에서 보상 합의가 이뤄져 건물이 철거됐다.

이어 2000년부터 2002년까지 364억원을 들여 구조물을 뜯어내 산지천을 옛 모습으로 복원하는 대공사가 실시됐다. 길이 600m, 폭 20m의 하천에 맑은 물이 흐르면서 은어·숭어와 백로가 돌아왔다.

2013년에는 원도심 활성화와 생태 복원을 위해 탐라문화광장을 조성하는 사업이 착수됐다.

탐라문화광장은 산지천 주변 4만5845㎡에 3개의 광장과 공원, 산지로 보행환경 개선, 도심 생태하천 조성으로 진행되고 있다.

산지천을 중심으로 탐라문화광장과 김만덕기념관, 김만덕객주터, 제주항 국제여객터미널이 들어서고, 차 없는 거리가 조성되면서 도시 재생의 패러다임을 바꿔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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