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지역 화교의 뿌리가 된 중국피난선 해상호 전경. 2002년 재현됐으나 지난해 철거돼 지금은 사라졌다.


제주시는 2002년 산지천을 복원하면서 22억원을 들여 중국 피난선도 재현했다.

70t급 범선인 ‘해상호(海祥號)’는 국공(國共) 내전을 겪던 1948년 공산당의 탄압 대상이던 중국 요녕성 장하현의 지주 가족과 친족 등 54명을 태우고 석승도를 출발, 대만으로 피난길에 올랐다.

배는 1950년 8월 인천항 임시 기항했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다시 남하하던 중 완도 인근에서 미군의 폭격을 받아 배의 일부가 파손됐다.

한국 해군은 인도적 차원에서 제주시 산지천으로 배를 예인해 줬다. 제주에 도착할 당시 생존자는 22명이었다.

산지천에 정박한 중국인들은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밀가루로 꽈배기를 만들어 팔았다. 또 부두 근처에서 비상품 야채를 얻어다 먹으며 8년간 선상생활을 이어갔다. 배는 1957년 해체됐다.

제주시는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그들의 현대사를 보여주기 위해 70t급 범선을 80% 규모로 복원해 피난민들이 산지천에 정박한 경위와 생활상을 보여줬다.

그러나 고단했던 생활상과 굶주림에 우는 아이를 밀랍인형으로 생생하게 재현해 되레 역효과를 불러왔다.

중국인 관광객들은 “창피하다”며 방문을 꺼렸다. 피난민들이 제주에 온 이유도 사회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중국인들의 정서에 맞질 않았다.

시는 관광객들이 외면하면서 지난해 해상호를 철거했다. 이 자리에는 탐라문화광장 중 하나인 산포광장이 조성되고 있다.

피난선 생존자와 그 자손들은 중국음식점 등을 운영하고, 화교소학교를 건립하며 제주에 정착했다.

이들은 제주지역 화교의 뿌리가 됐다. 그런데 대만 국적인 화교들은 세금을 내면서도 연금이나 교육,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해왔다.

심지어 1997년까지 200평(660㎡) 이상의 토지를 소유하지 못하도록 차별받았다.

중국음식점 등 가업을 이어받은 화교 2세들은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첫 투표권이 주어졌다. 지금은 어엿한 제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