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인식 전 해병대 사령관이 서울에 있는 찻집에서 37년간 몸  담았던 해병대의 전통과 명예에 대해 주먹을 불끈쥐며 얘기하고 있다.

“해병대의 고향은 제주도입니다. 무적해병(無敵海兵)의 신화는 제주 출신 3·4기 해병들이 만들어냈습니다.”

제26대 해병대 사령관(2003~2005년)을 역임한 김인식 예비역 중장(68)는 “3·4기 해병들이 있었기에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할 할 수 있었다”며 “그들은 자랑스러운 구국의 영웅들”이라고 말했다.

1949년 4월 15일 진해 덕산 비행장에서 창설한 해병대는 같은 해 12월 29일 1200여 명의 전 병력이 제주도로 이전했다.

제주읍과 모슬포에 주둔하며 4·3으로 피폐해진 민심을 수습하며 의료 및 영농 지원, 주민 계몽활동을 펼쳤다.

해병대가 제주에 주둔한지 7개월 만인 1950년 6·25전쟁이 터졌다. 제주 청년 3000여 명은 3·4기 해병으로 지원했다.

3·4기 해병들은 그해 9월 15일 인천 상륙에 이어 9월 27일 서울에 입성했다. 이들은 1951년 전략적 요충지인 도솔산전투에서 승전하면서 무적해병의 전설이 됐다.

“제주해군기지로 제주사회에 갈등이 있었죠. 군(軍)은 경계하거나 제한할 대상이 아닙니다. 제주를 발전시킬 수 있는 요인도 될 수 있죠. 1945년 전쟁 종식 후 오키나와 인구는 30만명에 불과했죠. 지금은 150만명에 이릅니다. 군 주둔→인구 증가→경제 성장으로 이어지면서 발전한 결과죠. 제주 역시 오키나와처럼 인구 100만명은 넘어야 지속 발전할 수 있습니다.”

1964년 16살에 온 가족과 함께 강원도 횡성에서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로 이사 온 김 전 사령관은 청춘을 바친 제주를 고향으로 여기고 있다.

지금도 본적은 금악리다. 개척농가의 아들로서 역경을 이겨낸 제주인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척박한 땅을 개척한 그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해병대와의 인연은 필연적이었다.

해병대 6여단장, 2사단장, 부사령관에 이어 2003년 별 셋을 달며 사령관에 올랐다. 제주 출신 중 해병대 사령관은 그가 처음이었다.

“지난해 12월 제주에서 해병9여단이 창설됐죠. 독립된 해병 여단으로서 제주의 든든한 파수꾼이 됐죠. 한·중·일 한가운데에 있는 제주도에 해병부대가 상주하면서 국가 안보 및 군사 전략 수립에 기여하게 됐죠.”

백령도에서 대대장으로 2년 반, 서북 5개 도서에서 여단장으로 1년을 보낸 그는 도서지역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제주도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곳입니다. 영토 수호의 전략적 거점이자 해상은 물론 항공 교통로의 요충지입니다. 제2공항과 항만시설 등 국가 중요시설을 방호하려면 군대가 필요합니다. 해병대의 발상지인 제주도를 해병이 지키게 된 것이 자랑스러운 일이죠.”

그가 사령관으로 역임했던 2004년 8월 해병대는 자이툰부대 일원으로 이라크에 첫 파병됐다.

1965년 청룡부대의 월남전 참전 이래 ‘빨간 명찰’의 해외 파병은 39년만의 일이다. 세계 최강의 군대로 꼽히는 해병대가 이라크에 파병되면서 국위 선양을 드높였다.

“해병대전우회는 전 세계에 퍼져 있습니다. 자발적으로 조직돼 봉사 활동을 하고 있죠.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끈끈한 전우애로 뭉쳐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