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리한 무덤 시신이 누웠던 자리에는 달걀과 무쇠, 버드나무를 함께 넣어 동티가 나지 않게 했다. 사진은 천리터 방법으로 버드나무를 꽂은 모습.

▲철리(遷移)


집안에 자주 흉험한 일이 자주 일어나면 일차적으로 조상묘를 잘못 쓴 탓으로 돌려 묘지를 옮기는 것이다. 즉 조상을 ‘일려 세워야만’ 집안의 평안과 번영을 찾을 수 있다는 풍수지리 관념 때문이다. 또 무덤이 있는 곳에 도로나 건물이 들어서면서 법적으로 형질변경이 되면 부득불 조상의 무덤을 옮겨야 한다. 철리는 천장(遷葬)이라고도 한다. 쉽게 이장(移葬)이라고도 하며, 면례(緬禮)는 면리로, 천이(遷移)는 철리로 발음한다. 옛날에는 장례 후 3~4년 있다가 철리 할 경우 매장된 원래의 관을 그대로 쓰지만, 여러 해 지나 관이 없는 경우 칠성판 위에 유골을 옮겨 볏짚으로 시신 길이만큼 엮어 시신 둘레를 두르거나 대나무로 발처럼 엮어 감쌌다. 운상(運喪)은 ‘상제(喪主)’의 의사에 따라 상여나 혹은 임시로 만든 ‘돌(아래아)채’라는 들것을 사용하며, 부조(扶助)는 친족들의 자의(恣意)에 맡긴다.  


철리터는 밭주인에 의해서 다시 경작지로 변한다. 약 3~4년 그대로 내버려 뒀다가 충분히 인기(人氣)가 빠지고 지기(地氣)가 정상적으로 돌아왔다고 생각되면 산담 한쪽을 터서 마늘이나, 콩, 보리, 유채 등 아무 곡식이나 심는다. 그렇지만 일반 경작지에서 생산된 곡식과는 달리 ‘철리터 곡속(아래아)(곡식)은 식게 멩질(제사 명절)에 아니 씬다’(쓰지 않는다)는 금기(禁忌)가 있다.


▲철리(遷移) 터 방법(防法) 


철리는 기본적으로 조상을 편안하게 해드리는 것이다. 철리(遷移)터 방법(防法)이란 철리가 끝난 원래 무덤자리를 갈무리 할 때 행하는 의례로 일종의 세속적인 비보 조치이다. 


먼저, 도교와 무속적인 내용의 방법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연유로 무덤을 옮기려면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3가지가 있는데 달걀, 버드나무, 무쇠가 그것이다. 사람들은 철리한 무덤에 방법을 하지 않을 경우 동티가 나서 큰 화를 면치 못한다고 생각한다. 무덤을 개장(開葬) 하기에 앞서 먼저 축을 고한다. “삼두구미 토신님께 옥황에 올라가십사” 하고 정성을 드리면, 사두구미 토지신은 옥황 앞으로 올라가 버린다. 그 틈을 타서 무덤을 열고 유골을 미리 가지고 칠성판에 차례대로 올려놓고 종이를 덮은 후 삼베로 열두 번을 묶는다.

 

그런 다음 시신이 누웠던 무덤 자리에 달걀 세 개, 무쇠 조각 세 개, 버드나무 한 가지를 꺾어다가 무덤 중앙에 꽂은 후 칠성판의 유골은 100보 밖으로 운구하여 성복제를 지낸다. 만약 그렇지 못할 때는 이장하는 무덤의 상주는 즉사 당하고 만다고 한다. 100보 밖으로 유골을 가지고 가버린 후 옥황에 갔던 삼두구미 토지신이 내려와서 자신의 영역의 있던 유골이 없어진 걸 알고 당황하여 이리저리 찾아다닌다. 먼저 맞닥Em린 버드나무에게 물어본다. “여기 유골이 어디 갔느냐?” 버드나무는 그저 뻣뻣하게 “모른다”라고 대답한다.

 

다음에는 무쇠에게 물어본다. 무쇠도 역시 먹먹하게 “모른다”고 대답한다. 이때 달걀은 스스로 나는 코도 없고, 눈도 없고, 입도 없고, 귀도 없고 해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 삼두구미 토지신도 인간에게 더는 조화를 부릴 수 없게 된다고 한다. 그래야 철리가 안전하게 끝나는 것이다.


또, 유교와 불교의 절충을 보여주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동촌(정의현)과 서촌(대정현)지역이 조금 다르지만 큰 차이는 없어서 대정읍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개장할 무덤 앞에서 몸제를 끝내면 왼쪽으로 꼰 새끼줄을 무덤 주위로 둘러서 매고 왼쪽으로 돌면서 방사경을 읽는다. ‘영신안불동 불진불경 계묘감동(迎神安不動 不震不驚 啓墓敢告)’이라고 3번 고하고, ‘영신안불동 불진불경 암다라리 사바하(迎神安不動 不震不驚 唵多羅? 娑婆訶)’라고 21번 읽는다.

 

이어 오곡 씨를 뿌리며 ‘암팔만사천사동신 보호영신 사바하(唵八萬四千四動神 保護靈神 娑婆訶)’라고 무덤을 7번 돌면서 읽은 다음, 무덤 사방에 오방신장군례(五方神將軍禮)로 버드나무 가지 다섯 개에 방법문을 붉은 글씨(石間?)로 써서 붙이고, 중앙황제장군(中央黃帝將軍)은 무덤의 중앙에 꽂아 잡귀나 귀신의 침해를 막은 다음, 괭이로 봄은 남쪽부터, 여름은 북쪽부터, 가을은 동쪽부터, 겨울은 서쪽부터 한번 찍고, ‘파묘(破墓)’하고 소리치며 사방을 한 번씩 찍은 후 무덤의 흙을 판다. 무덤의 관이 보이면 상주는 소리 내어 곡(哭)을 한다. 이때 관이 성했으면 뚜껑을 열어 망자를 대면하고 새 무덤 자리로 옮기지만, 관이 모두 삭았으면, 조심스럽게 체백(體魄)을 들어 올린다.


이때 유골을 수습하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다. 오문복 선생에 의하면, 한 가지는 무덤을 파헤쳐서 유골이 나오면, 미리 칼같이 만든 버드나무로 유골의 각 부분을 하나씩 들어내어 백지로 싸서 상하좌우 신체 순서를 확실히 구분하여 백지를 남게 붙인 칠성판 위에 바르게 놓는다. 이를 ‘설름장’이라고 한다. 


또 한 가지 수습방법은 유해에다 소주를 붇고 더러운 것을 씻은 다음 부드러운 댓가지를 뼈 밑으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가로 세로로 길게 질러서 한꺼번에 들어 올려 칠성판에 옮긴 후 댓가지를 빼버리고 삼베로 유해를 감싼다. 이때 칠성판에는 북두칠성을 그려놓고 유해를 감는 베를 엄포라 한다. 이런 장례방식을 ‘모심장’이라고 한다. 광중(壙中)에서 꺼낸 유해를 묶은 칠성판을 다른 곳으로 옮기길 때 ‘금이길진 천구감고(今以吉辰 遷柩敢告)’라고 고하고, 백 보 정도 옮긴 후 성복제를 지낸다. 철리 후에는 무덤 자리에 붉은 팥 1홉, 날달걀 1개, 무쇠 조각 21개를 묻어 흙은 덮고 버드나무 가지를 가운데 꽂는다. 이때 주문을 계속 낭독하는데 주문은 이렇다. ‘천천평화 지지평화 인인평화 귀귀멸멸 사바하(天天平和 地地平和 人人平和 鬼鬼滅滅)’


영구를 모시고 다른 장지로 출반 직전에 견전고사(遣奠告祀)를 지내고 축문을 ‘靈以再駕 往卽新擇 載陳遣禮 永訣終天’라고 읽은 후 운구한다. 새로운 장지에 도착하면 이후부터 예법은 초상 때와 같다.


▲버드나무, 이별의 상징


절양류(折楊柳)는 악부의 이름이다. 원래 내용은 고향을 떠날 때 버들가지를 꺾어주며 이별의 정을 노래한 것이다. 상촌(象村) 신흠(申欽·1566-1628)의 ‘절양류가(折楊柳歌) 이(二)수’는 다음과 같다.


‘나무를 심되 버들은 심지 말라(種樹莫種柳)/사람에게 이별을 슬프게 하나니라(敎人悲離別)/버들을 꺾되 뿌리는 상하게 하지 말라(折柳莫傷根)/뿌리가 상하면 좋은 가지 없느니라(根傷無好枝)


성한 가지는 어이 그리 간드러지며(倡條何??)/요염한 잎새는 어이 그리 예쁜고(冶葉何夭夭)/해 저문 위성 가에서(落日渭城畔)/이별의 간장 녹고 또 녹누나(離腸消復消)’


버드나무가 산 사람들의 석별 정을 나누는 징표라는 점에서, 새삼 철리 할 때 구묘(舊墓)에 남기는 버드나무 가지가 떠나가는 체백의 아쉬움의 표시라면, 이 또한 얼마나 운치 있는 산 사람들의 온정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