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300년 전 '제주목사의 21일'을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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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순력도, 관아.군사시설 및 지형, 풍물 등 소개
▲ 18세기 초 제주성 모습이 세밀하게 그려진 제주조점(濟州操點)

조선시대 제주목사는 병마수군절제사(兵馬水軍節制使)를 겸직한 군 통수권자였다. 순력(巡歷)은 지방관이 고을과 군 주둔지를 순시하며 민정을 살피고 군기를 조사하던 임무였다.

이형상 목사가 1702년 10월 29일부터 11월 19일까지 21일 동안 순력을 기록한 화첩이 탐라순력도다.

이 화첩은 18세기 초 제주도의 관아 건물, 군사 시설, 지형, 풍물 등이 자세히 기록돼 역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남았다. 탐라순력도를 통해 제주성내 모습을 살펴본다.

▲제주조점(濟州操點)=제주성의 모습이 가장 세밀하게 묘사된 화첩이다.

성곽에는 동문, 서문, 남문에 문루가 있었다. 성벽 위에는 군사들이 몸을 숨길 수 있는 ‘凸’ 모양의 여장(女墻·성가퀴)이 설치됐다.

성안에는 관덕정을 중심으로 관청 건물이 빽빽하게 자리 잡았다. 북쪽에는 망경루, 객사를 비롯해 옥(獄)은 둥근 울타리로 그려져 있다.

동남쪽 모퉁이에 있는 운주당은 장대(將臺·장수가 올라서서 지휘하던 곳)인데 깃발을 내거는 깃대가 있었다.

북수구 옆에는 산지물이라 불리는 산저수(山低水)가 표시됐다. 성 밖 남쪽에는 사직단과 함께 광양에 삼성혈과 연무정이 위치해 있었다.

동서남북에 내걸린 깃발을 보면 동쪽은 녹색, 서쪽은 백색, 남쪽은 적색, 북쪽은 흑색이며, 방향을 표시하는 괘도 표기했다. 오방색의 원리를 따른 것이다.

▲제주사회(濟州射會)=관덕정 앞 광장에서 활쏘기 대회를 하는 모습이다. 성안 남쪽에는 제주의 2인자인 제주판관의 집무처인 찰미헌 있었다.

관아 북쪽에는 향리들의 근무처인 작청과 주방 및 식재료를 관리하던 관청(官廳·관주)이 기다란 건물 형태로 들어섰다.

관덕정의 북쪽에는 목사 집무실인 상아(上衙)가 있고, 연희장소로 이용됐던 우연당이 자리했다.

외대문에는 종과 북이 걸렸고, 관덕정에는 수(帥)자 기가 내걸렸다. 수(帥)자는 총지휘관이 머물던 본영에 꽂았던 깃발이다.

그림 설명에 따르면 절제사인 이형상 목사를 비롯해 중군 제주판관 이태현, 대정현감 최동제, 정의현감 박상하, 군관 15명, 주무(州武:고을의 武學) 23명 그리고 각 청 임직원들이 활쏘기 대회에 참석했다.

▲제주전최(濟州殿最)=제주목사가 관리의 치적을 심사하는 그림이다. 당시 제주지방의 군대는 크게 속오군(束伍軍)과 마대(馬隊)로 구분됐다. 속오군은 3부(部) 6사(司) 30초(肖)로 구성됐다.

각 부의 책임자인 천총, 각 사의 책임자인 파총, 각 초의 책임자인 초관, 마대의 책임자인 별장 등 군 인사는 물론 훈장(訓長), 교사장(敎射場) 등 800여 명이 공적 심사 대상이었다.

전최는 상당히 엄격해 열 번 고과에 열 번 모두 상(上)을 받으면 1계급을 오려준다.

두 번 중(中)을 받으면 무록관(급여를 못 받는 관리)이 되며, 세 번 中을 받으면 자동 파직되게 했다. 하(下)를 받은 사람은 그 자리에서 당장 파직될 정도였다.

▲감귤봉진(柑橘封進)=망경루 앞뜰에서 감귤과 한약재로 사용되는 귤껍질을 봉진하는 그림이다.

여인들은 귤을 종류별로 나눴고, 귤이 짓눌려서 썩지 않도록 남정들은 그 옆에서 나무통과 짚단을 만들었다. 이형상 목사는 연회각에 앉아 일일이 점검하고 있다.

귤 종류는 금귤·유감·동정귤·산귤·청귤·유자·당유자·치자·진피·청피 등이다. 이렇게 봉진된 감귤은 조정의 제사용 과일은 물론 임금을 위한 진상용으로 보냈다.

1564년(명종 19)부터 시행된 황감제(黃柑劑)는 감귤이 진상될 때면 성균관의 유생들에게 귤을 나누어주면서 시험을 치르게 한 과거제도로, 그만큼 감귤을 귀하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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