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18세기 초 제주의 모습을 보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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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면 중 28면은 이형상 목사의 순력을 기록
▲ 제주시가 1999년부터 2002년까지 175억원을 들여 재현한 제주목 관아(국가사적 380호) 전경.

300년 전 제주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린 탐라순력도는 제주 유일의 화첩이자, 전국에서 ‘순력도’란 이름의 기록화로도 하나뿐이다. 1979년 보물 제652-6호로 지정됐다.

화첩은 가로 36㎝, 세로 56.7㎝로 41면으로 구성됐다. 그림은 제주목 소속 화공(畵工) 김남길이 그렸다.

이 중 28면은 21일 동안 실시된 이형상 목사 일행의 순력에 대한 기록도이다.

내용별로는 조점 8면(조천·별방·정의·서귀·대정·명월·애월·제주)과 양로 3면(정의·대정·제주), 시사 2면(별방·명월), 강사 2면(정의·대정), 사후 2면(천연·현폭), 점부 2면(모슬·차귀), 사회 1면(제주), 전최 1면(제주)이다.

조점과 점부는 삼읍성과 9개 진성의 군기와 군사훈련을 점검하는 장면이고, 양로는 경로잔치다. 시사와 강사는 군사들의 활쏘기 대회·시험을 그린 것이다. 전최는 관리들의 근무성적을 평가하는 모습이다.

18세기 초 탐라순력도에 기록된 제주는 어땠을까.

제주삼읍의 민가는 9552호에 인구는 4만3515명이었다. 밭은 3640결이고, 목장 64곳에서 말 9372마리, 소 703마리가 사육됐다. 국립 과수원에 해당하는 과원은 42곳으로 귤나무 7300여 그루가 심어졌다.

방어시설은 3성과 9진, 봉수 25곳, 연대 38곳이 있었다. 마을은 제주목에 95개 리, 정의현 22개 리, 대정현 12개 리 등 모두 129개 리가 존재했다.

진본은 이형상의 후손들이 간직해오다가 1998년 기증하면서 제주시가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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