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집단성과 그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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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주. 수필가

지금은 다양성의 시대다. 지구촌에 흩어져 사는 다양한 사람들이 나라의 경계를 허물고 자유롭게 넘나든다. 제 나라에 얽매어 살아야만 하는 시대가 아니다. 보다 좋은 일과 직장을 찾아 지구촌을 유랑하는 잡 노마드(Job Nomad)의 시대다. 기업들도 이런 추세에 따라 좋은 인재를 구하기 위하여 세계 곳곳에 구인 네트워크를 깐다. 저마다 살아남기 경쟁이다.

안드레 타피아는 그의 저서 ‘포용의 시대가 온다(2010. 청림)’에서 ‘기업들은 우수 인력 확보에 많은 투자를 하지만 투자한 만큼의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개별 인재들이 조직에 제대로 융화하지 못해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포용의 리더십으로 개별 구성원들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디 기업들뿐이랴. 우리 사회 전반에 들어와 있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과 그에 따른 문화도 우리와 융화하지 못함은 매 한가지다. 이들을 끌어안지 못하면 다양성은 오히려 사회 갈등의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사회 갈등은 신체의 암과 같아서 방치하면 무서운 세력으로 사회를 망가뜨린다.

타피아의 주장처럼 정치, 경제를 막론하고 우리의 현실 처방은 포용이다. 정치 지도자나 사회 지도층이 머리를 맞대고 포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다.

그런데 어떤가? 우리 사회의 리더들은 포용보다는 오히려 배척의 선두에서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자신의 정체성을 집단에서 찾으려는 우리 사회 특유의 집단성과 맞물려 풍파가 잦을 날이 없다. 옆에서 조그만 응원의 소리라도 들리면 저들의 저급한 리더십은 기세 등등이다.

우리 사회의 집단성은 ‘우리’와 ‘우리가 아닌 것’을 구분하고 경계한다. 우리만이 선이며 정의라 자긍한다. ‘우리’ 안에 포함되지 않은 것들은 배척하려들고, 무시하거나 깔보기도 한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유별난 소속욕은 이런 집단성과 무관하지 않다는 진단이다. 지연이나 혈연, 학연이나 특정 인연으로 얽힌 집단의 구성원들은 모두 다 내 우군이라 믿는 것도 우리 사회 집단성의 한 특징이다. 우리 사회의 집단 활동의 기저에는 이러한 집단사고가 똬리를 틀고 있다. 집단을 만들어 권력을 형성하고 그 집단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구현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이유다.

어떤 이는 이를 개인적 분파주의라 부른다. 이런 분파성은 유사한 분파와 경쟁 관계에 놓이기 때문에 역동성으로 작용하기도 한다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발전을 저해한다는 지적이다. 열개의 분파가 모여도 힘의 총량은 한 분파만 못하다는 말이다. 내 편이 하면 옳고, 저 편이 하면 꼴사나운 배타성 때문이다.

심리학자인 조너선 하이트도 그의 저서 ‘바른 마음(2014. 웅진)’에서 인간은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행동하는 게 아니라 옳고 그름을 먼저 직감한 후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나중에 근거를 만들어낸다. 내가 속한 집단을 지지하는 게 본디 인간의 속성이라고 했다. 편 가르기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이유로 들린다.

그러고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집단성은 우리 사회만이 안고 있는 현상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 해도 견해차를 존중해야 하는 게 민주주의 기본이다. 일방적으로 상대를 제압하려드는 것은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심각한 자기모순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누가 뭐라 해도 융화와 통합이라는 포용의 리더십이다. 정쟁이나 파벌, 파당은 배척의 리더십이 낳는 부산물일 뿐이다. 분파주의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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