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보내셨습니다
잘못 보내셨습니다
  • 제주신보
  • 승인 2016.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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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수필가

‘문자 잘못 보내셨습니다.’

누굴까. 낯선 번호다. 메시지를 들여다보다 아차 했다.

아침에 서둘러 처리해야 할 일로 문자를 보냈는데 그만 실수를 한 거다. 돋보기를 쓰고 했는데도 서두르다 그리 된 모양이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중요한 일이 어긋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맙다는 인사를 보냈더니, 금방 ‘다행입니다. 잘 처리되시길 빕니다.’ 정중하게 답이 돌아 왔다.

때로는 별 것 아닌 것 같은 일이 깊은 울림으로 온다.

사소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쉬운 일도 아니다.

어떤 사람일까. 남잔가 여잔가. 정중한 문구로 봐선 점잖은 인품의 중년 남성일 것 같다. 호감으로 잠깐 설렘이 스친다.

마음 같아선 음성 전화를 넣고 싶을 만큼 가슴이 훈훈했다.

보이지 않는 상대의 품격까지 느끼게 한다.

가끔 잘못 건너간 전화에 민망한 경우를 겪게 될 때가 있다. 짜증스럽거나 불친절한 목소리로 인해 불쾌함으로 기분이 언짢다.

바쁘고 복잡한 일상에 잘못 걸려온 전화까지 친절하게 받을 만큼 여유로운 마음을 갖기는 쉽지 않다.

나 역시 무심히 받은 전화에 퉁명스럽게 아니라고 답을 해놓고 나면, 금방 후회가 된다.

좀 상냥하게 답을 했더라면 서로 기분이 좋았을 걸. 조심한다고 다짐해도 그뿐, 내 얇은 인격의 바닥을 본 것 같아 얼굴이 붉어진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에 별로 관심 없다. 전화로 하는 대화는 상대를 볼 수 없는 만큼 음성은 곧 보이지 않는 거울이다.

음색에 따라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대충 가늠케 한다.

깍듯한 예의는, 그 사람의 인품과 됨됨이를 가늠해 볼 수 있다면 지나친 판단일까.

종종 감정근로자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을 때가 있다. 하나같이 상냥하고 친절하다.

자신의 감정을 이입시키지 않고 불평과 불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업무를 처리하는 직업인들이다.

목적을 갖고 설득으로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기란 지극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조목조목 잘 살펴 들으면 건조하고 극히 사무적으로 대하는 친절이 있는가 하면, 맑은 영혼을 가졌구나 할 만큼 성심을 다하는 이에겐 마음이 끌린다.

잘못 전달된 한 통의 문자에 대한 상대의 배려, 각박한 우리 사회가 부드럽고 밝아지려면 이렇게 조그마한 일부터 시작되어야 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2016년이 저물어 간다. 나라 안팎이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을 만큼 어지럽고 혼란스럽다.

올해는 좀 더 나은 새해를 기대했었는데, 기쁜 일보다 가슴 아프고 답답했던 일들이 많았던 해다.

이럴수록 이웃과 이웃이 가슴 열어 따뜻한 온기를 나누는 세밑이 되었으면 한다.

서로 탓하며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상대의 입장에서 넓은 아량으로 보듬어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하면 어떨까.

이해와 용서는 함께 어우러져야 할 사회의 기본 덕목이다.

나라의 어른이 필요한 즈음,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내 탓이요’ 하시던 말씀이 그리운 시점이다.

아침 출발이 좋다. 마음 조이며 기다리는 일도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음지에 내리는 한 줌 햇빛 같은 소소한 것들이, 마음을 열게 하는 힘이 된다는 걸 생각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