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곳오름 전경.

영화나 드라마에는 수많은 배우들이 출연해 극의 전개를 이끌어 간다.


이 배우들 중에는 주요한 역할을 하는 주인공이 있고, 주인공을 받쳐주는 조연들도 있다.


아무리 주인공이 연기를 잘하고, 잘 생긴 미남미녀라 할지라도, 주인공을 뒷받침 해주는 조연들이 없으면 주인공은 빛을 발하지 못한다.


어쩌면 조연들의 감칠맛 나는 연기가 주인공을 더욱 빛나게 하고, 극의 재미를 더하게 한다.


제주 360여 개의 오름 간에도 주연과 조연이 있는 듯하다.


병곳오름에 오르니 마치 이 오름이 주연 못지 않은 역할을 하는 조연과 같은 오름이라는 느낌이다.


병곳오름은 대한민국서 아름다운 길 100선에 포함된 서귀포시 표선면 녹산로에 위치해 있다.


정석항공관에서 가시리 방향으로 5㎞ 정도 더 진행하면, 우측 도로변에 ‘병곳오름’이라고 쓰인 말뚝 같은 표지판이 나온다. 이 표지판을 따라 농로로 진입하면 주차할 공간과 함께 병곳오름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 서귀포시 표선면 녹산로에 위치한 병곳오름은 탐방로 곳곳 벤치가 마련돼 있어 오름 주위 풍광을 감상하기 좋다.

이 곳이 오름의 진입로다.


병곳오름 주위에는 ‘제주 오름의 여왕’으로 불리우며 사철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따라비오름, 따라비오름과 갑마장길로 연결된 큰사슴이오름(대록산)과 작은사슴이오름(소록산)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어 병곳은 오르미들의 관심에서 다소 밀려 있는 오름이다. 드라만의 조연처럼.


하지만 정상에서 주위를 둘러보는 풍경만큼은 따라비나 큰사슴이 등 그 어느 오름 못지않은 풍광과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병곳오름은 예쁜 여러 이름을 갖고 있다.


이 오름에 병곳(꽃·甁花-인동과의 활엽 관목으로 늦봄에 병 모양의 노란꽃이 피는 나무)가 자라나서 병곳오름 또는 벵곳오름으로 불리웠다.


봉황새가 보금자리로 돌아오는 모습을 하고 있다 해서 봉귀악(鳳歸岳), 산의 형세가 무기고와 닮아서 병고악(兵庫岳), 풍수지리설상으로 기러기가 둥지에 앉아 있는 형국이라 해서 안좌(雁座)오름, 병의 주둥이를 닮았다 해서 병구악(甁口岳) 등 많은 이름을 갖고 있다.

 

   
▲ 산에 오르다보면 탐방로 곳곳 오름 보호를 위한 띠를 쉽게 볼 수 있다.

이 오름은 표고 288m의 그리 높지 않은 오름이지만 첫 진입로의 경사가 다소 가파른 편이다.


하지만 초입부터 나무계단이 잘 조성돼 있어 어렵지 않게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오름을 오르다 정상부에 다 올라왔을 무렵 탐방로가 좌우로 나뉜다. 어느 방향을 선택하던 상관없다. 어차피 다시 만나게 된다.


왼쪽을 택해 얼마를 가니 정상에 나무 벤치가 탐방객에게 쉼터를 제공한다. 서귀포~남원~표선~성산포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고개를 돌리니 주연급인 따라비오름과 대록산도 시야에 들어온다.


벤치에 홀로 앉아 김치와 두부에 막걸리 한잔하며 주변 경치를 감상하니 그야말로 천국이다.


‘함께 산행한 동료와 발을 맞추지 않아도 되고, 그저 내가 걷고 싶을 때 내 보폭에 맞춰 걷고, 걷다가 힘들면 아무데서나 쉴 수도 있고, 내가 걷고 싶은 방향으로 걷고, 이것이 바로 홀로산행의 묘미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다시 길을 나섰는데, 바로 뒤편에는 여럿이 빙 둘러 앉아 도시락을 함께하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통나무 벤치도 있다. 자녀들과 함께 오기 제격인 곳이다.


오름 정상 둘레 역시 야자수매트로 정비가 잘돼 있어 잡풀이 무성한 계절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도 즐길 수 있는 오름이다.


오름 둘레에는 유달리 보리수나무가 많다. 보리수열매가 모두 떨어진 계절이라 그 맛을 보지 못했지만 가을에 오면 작고 예쁜 빨간 열매를 실컷 맛볼 수 있겠다.


오름 정상 둘레에는 곳곳에 벤치가 조성돼 있어 아무 곳이나 앉아 주변 경치를 감상하기도 좋다.


어느덧 걷다보니 인근에 위치한 병곳오름의 동생격인 번널오름이 지척에 보인다.


많은 오름미들이 번널오름 주변에 차를 세우고, 번널오름을 오른 후 정상에서 농경지를 통해 병곳오름을 찾는다.


오름 산행에 정해진 순서가 없으니 거꾸로 거슬러도 누가 하나 나무랄 사람은 없다.


또한 병곳오름 가까이에 있는 설오름과 갑선이오름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어 기왕 집에서 먼 길 나섰으니 시간여유를 두고 4개 오름 정상 모두를 발아래 두는 것도 좋다.


조문욱 기자
mwcho@je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