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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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기, 시인

삶은 기다림이다.

 

그 기다림이 익으면 그리움이 된다.

 

기다림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없는 사람은 없다. 어린 시절 오일장에 간 어머니를 기다리다 깜빡 잠이 들었을 때 개 짖는 소리와 함께 돌아온 어머니의 시장 가방에서 쏟아져 나온 홍시 몇 알은 보석처럼 가슴에 박혔고 그 단맛은 기다림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되고도 남았다. 점심시간을 기다리는 짧은 기다림에서부터 겨울 방학을 기다리는 지루한 기다림도 겪었고 설빔에 대한 설렘으로 잠을 설치는 기다림도 있었다. 이제 생각하면 이 모든 것이 지울 수 없는 그리움이다.

 

뭐라해도 기다림은 어머니의 기다림일 것이다. 군대 간 아들을 기다리는 마음이 옅은 하늘 빛 이라면 먼 길 떠난 남편에 대한 기다림은 짙은 바다 빛이리라.

 

12월, 마지막 달력 앞에서 새해를 기다린다. 2016년 12월 31일 뜨는 해와 2017년 1월 1일 뜨는 해가 뭐가 다를까만 힘들고 어려운 한 해를 보내는 마음은 새해에는 좋아지겠지, 달라지겠지 하는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판도라’라는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도 우리 인간에게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판도라 상자 속에 남은 마지막 희망 하나가 있기에 웃으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기다려야 숙성(熟成)되고 숙성되어야 성숙(成熟)해진다. 동짓달은 기다림의 마지막 달이다. 그래서일까 간장 담그는 집이 많다. 콩을 물에 담가 불리는 기다림부터 푹 삶는 기다림, 메주를 만들고 발효시키는 기다림, 메주를 소금물에 담가 맛이 들기를 기다리는 것까지. 그러고 보면 우리는 지금처럼 빨리 빨리에 목말라하는 민족이 아니라 느긋하게 기다리며 느림의 미학을 즐기는 여유로운 민족이었음이 분명하다. 광복 이후 산업화에 조급한 마음이 오늘처럼 기다리지 못하는 민족으로 바꾸어 버린 건 아닐까.

 

그러나 전화위복(轉禍爲福)의 지혜를 발휘하는 우리 민족. 그 조급함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통신망을 갖춘 나라로 바꾸었으니 우리에겐 어떤 악조건이라도 그를 극복하는 ‘희망’이 남아 있다.

 

‘이게 나라냐’라며 타오른 촛불은 아주 빨리 ‘정치’를 바꾸는 데에는 특효였다. 왜냐하면 ‘정치’는 표(票)를 먹고사는 변온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은 증거를 먹고 사는 냉혈동물이기 때문에 촛불로 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 기다림도 많은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특효약이 될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그리고 그 아픔이 시간이 흐르면 아련한 그리움으로 곱게 자리할 테니까.

 

2016년 마지막 ‘해연풍’이다.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지으시고 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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