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아이의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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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창. 신학박사/서초교회 목사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복잡한 길을 다니는 일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요즘은 자주 버스를 타고 다닌다. 출·퇴근 시간을 피해서 버스를 타면 서울 시내를 고속으로 관광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엊그제도 버스를 타고 가는데 뒷좌석에 앉은 젊은 아줌마의 핸드폰 대화를 듣게 되었다. 아무 거리낌없이 하는 이야기라서 엿들은 게 아니라 들려오는 소리를 그냥 들을 수밖에 없었다. 젊은 아줌마가 그의 언니와 속상한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아줌마의 아들이 문제였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아들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다닌다고 했다. 왕따시키는 아이들보다는 자기 아들에게 문제가 더 있는 거 같아서 속이 상한다는 이야기였다.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듣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요즘 축구를 한다고 했다. 강남 아이들은 성장 과정에서 축구를 할 일이 거의 없지 않은가 하면서 아줌마들의 대화는 문제의 핵심으로 접어들었다. 강남하면 물질주의나 개인주의를 먼저 떠올리는데 그런 동네에서 아이들이 모여서 축구할 기회는 거의 없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아이들은 혼자서 하는 게임에는 뛰어나지만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적 게임에는 익숙치 못한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갑자기 축구를 하게 되니까 아이는 축구 자체를 낯설어 했다. 공을 차는 것이 서툴고 패스도 잘 못하고…. 그런데 의외로 축구를 잘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 아이들은 서로 패스하고 함께 소리도 지르면서 축구를 곧잘했다. 그러니까 축구를 잘 하는 아이들은 아들에게 패스를 하지 않았다. 패스해봐야 잘 받지도 못하고 받아봐야 도움이 안되니까 아들은 운동장에 한가운데 엉거주춤 서있기만 했다. 혼자 짜증을 내다가 말았다가 하면서 운동장 한가운데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서 있는데 어쩌다 공이 아들 편으로 굴러왔다. 그러자 아들은 그동안의 따돌림에 분풀이라도 하듯이 공을 같은 편이 아닌 상대편으로 패스하고 말았다. 그러자 상대편은 갑자기 만난 횡재를 득점으로 연결시키고 말았다.

그리고나서 아이들이 아들을 어떻게 대하게 되었는지 너무나 뻔한 이야기가 아닌가 했다. 그래서 아줌마는 너무나 속이 상한다고 했다. 아이들이 아들을 따돌려도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아줌마는 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그래 상대편에게 패스하면 상대편 아이들이 너를 좋아할 줄 아니? 그 아이들도 너를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니? 같은 편 친구들도 그렇고 상대편에서도 그렇고, 누가 너를 좋아하겠니?”

그러니까 아들은 스스로 따돌림을 받게 된 것이 아닌가? 젊은 엄마는 누구나 들어도 할 수 없다는 듯이 달리는 버스 안에서 목청을 높였다.

공공의 장소에서 따돌림받은 아들 이야기를 소리 높이 외치던 아줌마가 축구를 한다면…. 아줌마에게서도 따돌림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따돌림의 대화가 끝날 무렵 아줌마는 강남역 다음에선가 내린 듯하다. 개인주의와 물질주의로 이름난 동네에서 내린 것이다.

나는 개인주의와 물질주의로부터 조금은 소외감을 느낄 만한 강북 어느 동네를 향하고 있었다. 동대문 역사공원 근처에 가면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의 식당이 있다. 거기 가면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의 빵과 양고기를 맛볼 수 있다. 언젠가 우주베키스탄의 친구들을 다시 만날 생각을 하면서 한강을 건너가고 있었다. 그 나라는 가난한 편인데 축구는 꽤 강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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