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봉 해돋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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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호/시조시인

어디에 가 있어도 새해 일출은 꼭 보겠다는 나와의 약속은 진행 중이다. 그래서 새해 첫 날 날씨가 쾌청하기를 바란다. 물론 맑아도 구름에 가려 해돋이를 못 볼 때가 다반사다.


올해도 별도봉을 향했다. 지난해엔 차를 몰고 갔다가 주차할 곳이 없어 낭패를 보았다. 그래서 걸어가기로 했다. 경찰들의 수고 때문인지 사라봉 입구는 생각만큼 차들이 정체가 덜하다. 벌써 많은 분들이 정상을 향해 가고 있다.


새벽바람이 그리 맵지 않다. 꼭대기에 다가갈수록 인산인해다. 여명(黎明)의 바다엔 집어등이 환하다. 부두에선 엔진소리. 북쪽 기슭에선 장끼도 운다. 일곱 마리 새가 허공을 가르며 동쪽으로 날아가고, 그 위로 두 대의 비행기가 북쪽으로 가고 있다. 풍선 세 개가 둥실둥실 떠간다.


오늘 따라 별도봉 풍경이 색다르다. 정상엔 발 디딜 틈도 없이 남녀노소가 꽉 찼다. 사람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섰다. 시야가 확 트이지 않지만 어쩔 수가 없다. 07시 35분쯤 붉은 기운이 오름 위로 퍼지기 시작하자, 너나 할 것 없이 핸드폰을 열고 셔터소리만 난무한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왜 왔을까. 정유년 새해 아침 찬란하게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나름대로 소원을 빌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렇다. 소원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순간만이라도 절실한 마음으로 자기를 돌아보고, 새로운 다짐을 한다는 것은 숭엄(崇嚴)한 일이다. 드디어 새빨간 햇덩이가 솟기 시작한다. 갑자기 조종현의 시조 ‘의상대 해돋이’가 떠오른다.


‘천지개벽이야/ 눈이 번쩍 뜨인다/ 불덩이가 솟는구나/ 가슴이 용솟음친다/ 여보게/ 저것 좀 보아/ 후끈하지 않은가’ 어둠을 지으며 떠오르는 황홀함에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다. 신동엽의 대표시도 생각난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 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醮禮廳)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漢拏)에서 백두(白頭)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제발 올해는 껍데기는 사라지고. 진실한 알맹이가 살아 움직이는 행복한 나라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 왠지 돌아오는 길은 가슴이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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