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토롱 장소로 가고 있는 상주들. 토롱은 택일 등이 좋지 않을 때 이용하는 임시매장이다.

▲토롱(土壟)


망자의 택일이 좋지 않거나 상주가 먼 곳에서 도착하지 못한 때, 또는 명절이 다가와 부정(不淨) 때문에 동네 사람들이 도울 수 없어 택일이 길어지는 때 등 가매장(假埋葬) 방법으로 택하는 장법이 있다. 이를 토롱(土壟), 혹은 출병(出殯의 제주어) 이라고도 한다. 출병은 출빈(出殯)의 제주식 와음이다. 지금부터 30년 전만 해도 쉽게 볼 수 있었던 임시매장 방법이다.


서귀포시 토평 마을인 경우 토롱하는 이유를, 먼저 장래 택일의 문제로 상주의 참여 수, 막은 절기, 상주의 운을 들고 있다. 그리고 홍수나, 폭설 등 천재지변인 경우, 명당이나 묫자리를 고르지 못한 택일의 문제, 전염병이나 난리에 의한 운상(運喪) 문제, 맏상주가 출타해버려 주상(主喪)의 부재, 혼사, 상주가 없는 집안의 사정, 포제, 명절 등의 관습의 문제를 들고 있다. 필자의 할머니는 1980년 초에 날이 궂어서 7일장을 해야 했는데 이때 토롱을 한 적이 있다.


토롱은 먼저 풍수지리와 상관없이 막은 방만 피해 마을 가까이에 있는 적당한 밭을 지정하여 관 크기에 맞게 광중을 파서 관이 땅에 닿지 않게 소나무 가지를 깔고 입관한 다음, 다시 소나무 가지로 관을 덮고 흙을 조금 뿌린 후 띠로 엮어 만든 ‘노람지’를 그 위에 두르고 고깔 같은 ‘주제기’를 씌워 비가 들지 않게 한다. 소나무 가지는 바람에 눌이 불리지 않거나 쥐가 들지 못하도록 덮는 것이다. 토롱은 흔히 남해안의 초분(草墳)같기도 하지만, 초분처럼 2차장인 세골장(洗骨葬)이 아니라, 시신을 임시 두었다가 장례 기일이 되면 정식 장례인 장지에서 매장한다는 점에서 임시매장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토롱은 용미지절(龍尾除節)은 내지 않고 토신제도 지내지 않는다.


 ▲출타해서 죽은 사람의 장례


간혹 어떤 사람이 동네 바깥으로 출타했다가 객지에서 사망한 경우에는 그 시신은 바로 집안에 두지 못하고 집 가까이 야외에 장막을 치고 빈소로 삼아 장례를 치르기도 한다. 만일 망자가 너무 젊어서 억울하니 상주(喪主)가 꼭 그 시신을 집안으로 들여놓고 싶으면 자연스럽게 “어딜 갔다 늦었느냐? 어서 식사해라!”라고 하여, 평소처럼 말을 한 후 시신 앞에 먼저 식사를 차려 놓고 난 다음에 집안으로 맞아들였다. 대정지역에서는 해상 사고 시 이처럼 한다.


또 동네의 한 남자가 바다에 빠져 죽자 해녀들의 협조를 얻어 며칠 동안 바다를 뒤지고 시신을 찾아오자 친족 한 분이 시신을 향해 “술 먹어, 술 먹어”하고 말을 하면서 뭍으로 인양한 후 천막을 친 자리에서 상례를 준비다.


▲암창개


암창개란 슬픈 혼인, 즉 신랑 없이 혼례를 결혼을 치르는 어두운 결혼을 말한다. 혼례를 약속해 놓고 혼례 당일이 돼도 출타했던 신랑이 예정대로 돌아오지 못하거나, 전쟁에 출정하여 기약이 없을 때 신랑집에서는 상객들만 신붓집으로 가서 신부를 모셔와 치르는 것이다. 또 다른 경우에 치르는 암창개도 있다. 신랑 신부가 약혼한 다음 혼례를 치르기 전에 신랑이 친상(親喪·부모상)을 당했을 때도 상주로서 근신한다는 뜻으로 암창개가 치러진다. 이때 신랑 신부 예복은 유색(有色)을 삼가 한다. 신랑은 가만히 방안에 앉아있으면 상객들만 신붓집으로 가서 신부를 모셔온다. 신부는 신랑 집에 오자마자 상복(喪服)을 입고 배례하고 난 다음 신부상을 받도록 하는데 하객들의 참례나 접객은 보통 잔치 때와 마찬가지로 치른다.

 

   
▲ 양지바른 곳의 아기무덤, 아기구덕에 아이의 시신을 넣고 묻은 후 아기구덕은 태워 버렸다.

▲죽은 혼(아래아)소(아래아)(死婚)


결혼할 연령이 되어 급작스럽게 죽은 남녀를 맺어주는 의례이다. 이를 ‘죽은 혼서(婚事·死後婚)라고 한다. 예전에는 총각, 처녀가 죽은 다음 오랜 시일이 지나서도 죽은 혼서를 치렀는데 요즘은 사망 직후에라도 영혼 결혼을 치른다. 먼저 남자 집안에서 여자 집안에 청혼한다. 그래서 승낙이 되면 날을 잡아 일반 혼례 절차와 같이 약식으로 하는데 사돈 의례나 친족·이웃의 참례 역시 같다. 상을 차린 후 그 앞에서 독축으로 미혼인 남녀 망자들이 부부가 되었음을 고하면 간단한 잔치가 시작되고 이때 친족들은 부조로 집안에 답례한다. 이미 무덤이 조성된 경우 따로 있었던 신부의 무덤은 신랑 옆자리로 이장하여 합장한다. 구좌읍 하도리 지역의 한 집안은 태평양 전쟁 때 일본으로 징병을 가동해 바다에서 미해군에 격침될 때 수중고혼이 되자 수십 년이 지난 그의 가족은 동네 규수를 물색하여 사후혼을 맺은 사례가 있다. 이 경우 외침이나 해난 사고가 잦았던 제주에는 동네마다 흔한 혼례법이었다. 


▲아총(兒冢·아기 무덤)


옛날에는 영유아 사망률이 높아서 한 집에 한둘은 아기 무덤을 만들었다. 특히 북쪽 마을 어귀 한 소낭밭에 자연히 아기 무덤 공간이 조성돼 있어서 장마철이 되면 밤중에 아기 울음이 자주 들렸다고 한다. 아총은 성인이 되기 전에 죽은 아이의 장례식으로 15세 이전까지가 이에 해당한다. 아이가 죽었을 때 아이의 시신을 대로 엮어 만든 아기 재우는 ‘아기 구덕’에 넣고 마을 가까운 양지바른 야산의 매장지까지 가서 시신만 따로 묻고 아기 구덕은 그 자리에서 태워버린다. 이것을 아총(兒?)이라고 한다. 아이의 장일(葬日)에는 그 아이가 평상시 쓰던 식기를 방 앞이나 마당에서 깨뜨려 버려야 한다는 속신이 있다. 아이를 묻을 때는 큰 바가지에 밥, 수저, 고기를 넣고 아이의 가슴에 안겨준다. 아이의 봉분은 잘 만들지 않지만 간혹 자그마하게 만들어 두기도 한다. 그 위에 귓가시낭이나 생솔가지를 덮는다. 이런 봉분은 조그만 시간이 지나면 평지처럼 돼버려 무덤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가 없게 된다. 


▲빗돌(碑石) 마련


예전에는 빗돌 마련의 풍습이 있었다. 자신의 집 올래 어귀에 평평하고 각진 사각형의 돌을 미리 준비해 쌓아둔다. 비석은 주로 부드러운 조면암재로 만들었고 돌자귀로 비석을 평평하게 기초를 다스린 다음 무쇠 솥뚜껑으로 밀고 당기면서 연마하였다고 한다. 이후에 자신의 무덤에 비석으로 쓰기 위함이니 자손의 짐을 덜기 위한 배려의 마음이 엿보인다.


▲산자리 도(아래 아)툼(山訟)


제주에서는 묘를 산(山)이라고 부른다. 좋은 산(묘)자리, 즉 음택지를 찾아 조상을 모시고자 한 까닭에 싸움이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투장(偸葬), 암장(暗葬)이나 헛무덤(헛봉분) 또한 좋은 산터를 쓰기 위함이다.


백나용 기자 nayong@je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