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빛의 구름을 더 얻지 못해 큰 울음 토해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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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팔운석>용궁갔던 해녀 부모 공양 위해 살아 돌아왔다는 전설 품은 ‘용궁올레’·‘칼선도리’도 비경

소암(素菴)은 탁배기 한 잔 들이켜
허연 수염 쓸며 바다를 바라본다
취기 오른 소암
곁에 앉은 제자 소농(小農)에게
지필묵을 대령하란다

바람 맞아 볼그레한 얼굴빛이
마장밭 잔디처럼 해맑은 소암,
기분 좋은 듯 허허 웃는다

바다엔 갈매기 날아다닌다
잔디밭엔 한 무리 학이 춤을 춘다
바닷바람도 소암 곁에 살포시 앉았다

호방한 웃음 지으며 붓을 잡는다

“八雲石”

후일 제자 소농이 돌에 각을 했다지
그 돌, 마장 어귀에 심어 소암을 기린다지.

                                                                                         - 이승익의 ‘팔운석’ 전문

 

 

▲ 서귀포시 성산읍 신천리 해안에 위치한 팔운석(八雲石). 아홉가지 빛깔의 구름 중 한가지 색깔의 구름을 얻지 못했다는 전설에서 팔운석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2016년이 역사 속으로 꼴깍 넘어가는 마지막 날. 아침 10시.


이승익 시인은 성산읍 신천리 바닷가의 팔운석(속칭 고망난 돌) 앞에서 자작시 ‘팔운석’을 우렁우렁 낭독했다.


파도는 시의 행간과 행간에 피아노 건반을 누르듯 배경음악을 깔아주었다.


때맞춰 시의 내용처럼 갈매기도 떴다.


구멍 난 바위 사이로 구름빛도 보인다.


스케치북을 펼친 임성호 화가의 손놀림도 바빠졌고, 허영숙 사진작가의 카메라 셔터도 연신 터졌다.


동행했던 예술인들도 절경에 취해 뜨거운 감탄사를 토해냈다. 이미 이 바닷가는  시인 묵객들의 발길이 닿았던 곳이다. 1985년에도 소묵회에서 ‘임서대회를 겸한 야유회’를 가졌는데, 당시 그 모습을 그린 것이 바로 이승익 시인의 이 작품인 것이다.


이날 소암 현중화 선생은 이곳의 아름다움을 빗대 ‘팔운석’을 언급한 청음 김상헌의 남사록 기록을 따서 ‘八雲石’이란 글씨를 썼는데, 훗날 이 바위의 이름표가 되었다.


성산포문학회에서 펴낸 ‘성산풍아(成山風雅)’에 팔운석에 대한 다음의 해설이 있다.

 

이 바위 구멍에서는 여덟 가지 빛의 구름이 내뿜어진다는 말이 전해진다. 신선은 아홉 가지 빛의 구름으로 집을 지어 사는데, 이곳에도 신선이 집을 지으려고 했지만, 한 가지 빛의 구름을 더 얻지 못하여 포기했다는 데서 팔운석이란 이름이 생겼다 

 

이에 소농 오문복 선생은 “신선이 사는 집은 못돼도 그 버금은 될 것이란 뜻”이라고 덧붙이셨다.
사실, 나는 거의 매일이다시피, 오름을 오르고, 제주의 속살들을 찾아 나선다고 했지만, ‘팔운석’에 관한 얘기는 이번에 처음 들었다. 그 장소가 ‘신천 목장’이라고 해서, 깊은 산속이겠구나 싶었는데 뜻밖에 바닷가였다. 마을목장이 바닷가에, 그것도 이렇게 광활하게 펼쳐진 곳은 흔치 않을 것이다.
영상 7도의 쌀쌀한 날씨 속에도 ‘신천 목장’ 입구에는 이미 관광 차량들이 우리 보다 먼저 와 있었다.


맨 처음 만난 것은 수만 평의 잔디밭에 널린 감귤껍질이다. 황금색으로 넘실대는 잔디밭과 푸른 바다가 경계를 허문 풍경은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이다.


올레 3코스는 ‘팔운석’과 더불어 ‘용궁올레’, ‘칼선도리’라는 보석 같은 풍경과 이야기도 품고 있었다.

 

어느 날 해녀 송씨가 수심이 깊고 험한 곳에서 혼자 물질을 하다가 남해 용궁까지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살아서 돌아올 수 없었으나, ‘내가 죽으면 늙은 부모를 공양할 이가 없다’는 말로 겨우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해녀가 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바닷속에서 칼을 거꾸로 세운 것 같은 바위들이 솟아 올라 인간이 다시는 남해 용궁으로 들어 갈 수 없도록 막았다고 하니 ‘칼을 세워 놓은 다리’란 뜻의 ‘칼선도리’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마치 ‘별주부전’을 떠오르게 한다. 이렇게 ‘고망난 돌’ 해안은 신과 사람을 소통하게하고, 시인 묵객들의 흥취를 자아내게 한다. 우리가 ‘바람 난장, 예술이 흐르는 길’ 기획의 첫 방문지로 이곳을 선택한 이유다. 예술의 특성상, 서로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모두 그들만의 리그인 셈이다. 장르 간 소통이 때로는 위대한 발자국을 남긴다.

 

▲ 임성호 作 팔운석소견.

오페라의 탄생도 그랬다.


16세기 말,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시인, 음악가, 화가, 건축가 등 예술가들에 의해 소그룹 ‘카메라타(Camerata)’가 만들어졌고, 그들의 활동이 음악의 한 축인 오페라 형식을 낳았다고 한다.


하지만, ‘바람 난장’의 사람들은 어떤 기대나, 목적을 위하여 만나지 않았다.


친구가 친구를 소개하듯 그렇게 우연히 만났고, 우리의 흥에 겨워 그냥 제주의 속살들을 찾아 떠돌기로 한 것이다. 우리의 만남에 뜻을 함께 하는 동행이 있으면 좋겠고, 그렇지 않아도 우리끼리 난장을 펼쳐 보고자 한다. 사람이 걸으면 길이 되고, 그 길은 세월 따라 문화가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글 : 오승철 시인
-그림 : 임성호 화가
-사진 : 허영숙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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