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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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돈 제주테크노파크 수석 연구원/논설위원

도산 안창호 선생은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과연 우리는 먹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먹고 살 만한 사장님, 회장님들이 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에 매달리는 것일까요.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기꺼이 일하도록 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흔히들 일하는 까닭은 돈벌기 위해서, 먹고 살기 위해서, 지금보다 잘 살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며 어떤 게임이나 놀이와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인 대화 속에서도 ‘일’은 ‘큰일났다’, ‘일 저질렀다’, ‘일이 많다’는 식으로 부정적으로 비춰지고 있으며 성경을 보아도 일이란 아담과 이브가 금단의 열매를 따 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 날 때 여호와로부터 받은 ‘죄값’으로 표현합니다. 근로자들의 주장도 수백년에 걸쳐 한결같이 월급은 올리고 일은 줄이려는 시도로 일관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다른 관점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근로자들이 노동시간은 주당 평균 40시간으로 줄었는데 ‘일’ 때문에 바쁘다는 말은 더 많이 들립니다. 그뿐인가요. 학교를 졸업한 여성들이 결혼보다는 일터로 나가기를 더 원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가정에서 편히 쉬고 있는 주부들마저 취업전선으로 나옵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homo sapiens)이기도 하지만 노동하는 동물(homo faber)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일’은 자연스러운, 너무나 당연한 행위요, 권리입니다. 단지 ‘일’의 방법이 잘못 만들어 졌을 때, 자연스러운 ‘일 본능’에 역행하게 되고 일이 싫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볼 때 ‘일’에 대한 두가지의 상반된 관점, 즉 긍정적 견해, 부정적 견해는 사실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부정적인 면을 뒤로 하고 긍정적인 면을 대두시킴으로써 사람들을 신바람 나게 일하도록 하여 조직의 성과도 올리고 그들의 삶도 보람 있게 만들 수 있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생각에 따라서 일이 갖는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지,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일깨워줍니다.

여기 돌 깎는 석공 셋이 있습니다.

“지금 뭐하고 있습니까?” 첫 번째 석공에게 물었습니다. “눈 없소? 보면 모르오?” 그는 불평을 합니다.

“뭐 하는 중입니까?” 두 번째 석공에게 물었습니다. “돈 벌고 있잖소. 가족을 먹여야 하고, 좋은 집도 사야 하고 돈을 더 많이 모아야 하기 때문이오.” 아무 감정 없이 사무적으로 대꾸합니다.

“뭐하고 있습니까?” 세 번째 석공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영혼의 안식을 찾을 수 있는 훌륭한 성당을 지을 돌을 다듬고 있소.” 그가 열정과 행복에 찬 미소로 대답했습니다.

첫 번째 석공은 매일 똑같은 일에 찌들어있습니다. 그래서 불평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삶은 목표가 없고 삶이라는 무게를 견디어내고 있을 뿐입니다.

두 번째 석공은 좋은 집을 가지고 돈도 벌 것입니다. 그러나 공허한 삶을 돌아보며 이기적인 사람인 채로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는 부지런하지만 남이 시키는 일을 할 뿐, 행복과 기쁨과 열정이 없는 텅 빈 삶을 살고 있습니다.

세 번째 석공은 삶의 목표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 그와 그의 가족을 먹여 살리고, 그 또한 행복과 건강과 활력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그는 ‘일’이란 행위에서 물질 이상의 ‘가치’를 바라보고 있으며, 그것을 통해 성실 이상의 열정을 발휘할 것입니다.

세 명의 석공은 모두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결코 같지 않은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석공과 비슷합니까? 그리고 어떤 석공이 되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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