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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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주. 수필가

레가툼 번영지수(Legatum Prosperity Index)라는 게 있다. 영국의 공공정책 싱크탱크인 레가툼 연구소가 해마다 발표하는 일종의 살기 좋은 나라 순위다. 지난해는 149개국 중 뉴질랜드가 1위, 한국은 35위였다. 우리보다 앞선 아시아 국가는 싱가포르(19위), 일본(22위), 홍콩(23위)이다. 경제·벤처 기회·정부·교육·건강·안전·개인 자유·사회적 자본 등 8개 분야를 평가한다. 그중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분야는 ‘사회적 자본’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힘을 합쳐 공동 목표를 추구할 수 있게 하는 협력과 신뢰 같은 사회적 자본을 의미한다. 그 순위가 해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는 105위로 바닥 수준이었다. 봉사 활동, 기부, 타인을 도와주는 것, 종교 활동, 신뢰도 등을 측정하는 데 그 중에서도 사회적 신뢰성이 심각한 수준이었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는 불신의 늪에 빠져있다는 평가였다.

사회적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중요한 요인은 정보에 대한 불신이다. 인터넷의 보편화로 종이 신문은 줄었지만 신문사는 증가했다. 방송도 매체의 증가와 다변화의 영향을 받고 있다. 시청률이나 구독자를 넓히는 게 예삿일이 아니다. 시사나 정보 분야까지 진실 여부를 떠나 자극적인 소재를 동원하는 이유다. 방송패널로 등장하는 전문가들이 늘어놓는 말들은 듣기 힘겨울 지경이다. 진위여부를 따지는지는 그들만의 비밀이다.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아니면 말고’ 식이다. 부적절한 정보가 화면과 지면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양산되는 것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를 망라한 일상생활과 밀접한 건강이나 식품, 운동 정보까지 자극과 과장으로 각색되기 일쑤다. 인터넷 포털 역시 부적절한 정보를 걸러낼 장치가 미흡하다. SNS로 퍼 나르는 지라시들은 바이러스처럼 순식간에 번진다. 공포수준이다. 어느 게 진실이고 거짓인지 그야말로 혼돈이다. 믿을 게 아무것도 없다는 웅성거림이 사회 곳곳에서 들린다.

이런 사회 상황의 저변에는 공동체나 미래세대의 공익은 외면한 채 사리사욕이나 정쟁에 매몰된 정치, 극단적 이기주의, 여론이 정의라는 선동적인 포퓰리즘이 깔려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처럼 나쁜 것들이 좋은 것들을 몰아내는 망조 현상이 번지기에 알맞은 배지가 되고 있다.

임시 처방적인 규제 일변도의 정책들이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정책들을 밀어내고, 값싼 불량품이나 짝퉁들이 질 좋은 정품들을 쫓아내고, 불량 학생이 선량한 학생을 불량 지대로 내몰고, 쓰레기 정보들이 진실한 정보마저 불신케 하는…. 이런 악화를 가공하고 유통하는 주체는 모두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게 불량 사회다.

우리의 유구한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 민족은 위대하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았고, 6·25의 참화에서도 나라를 지켜냈다. 세계 최빈국의 가난에서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 강국의 기적도 이루었다. 저마다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자각하고 실천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지금의 어려운 시대 상황도 우리에게 고전적인 애국심을 요구한다. 불신은 분열을 초래하고, 분열은 투쟁을 부른다. 법치를 외면한 분파적 투쟁은 또 다른 투쟁을 낳으며 더 큰 파국으로 치달을 뿐이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번영을 향한 신뢰와 화합의 길이다. 우리 서로는 선의의 경쟁 대상이지 적이나 투쟁의 대상이 아니다. 모두가 위대한 민족의 후예라는 자긍심으로 새해를 열어나가야 한다.

새해 벽두의 간절한 기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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