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겨울밤 책 읽기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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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구. 애월문학회장/시인/수필가

독서의 계절은 가을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책 읽기에는 눈 내리는 겨울밤처럼 제격인 때가 없다.

코끝이 찡할 만큼 추운 겨울은 잠시 멈춰 서서 숨 가쁘게 달려온 시간을 되돌아보는 계절이면서, 새로운 봄을 준비하며 설레는 계절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 청소년들은 방학 동안 몇 권의 책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필자 역시 어린 시절, 초가의 방에서 등잔불을 켜놓고 밤이 깊도록 책을 읽는 일이 많아진 것도 아마 초등학교 5학년 겨울 방학이라고 생각된다.

책이 흔치 않았던 내 고향 중산간 광령이라는 시골 마을에서 한 권이라도 더 읽으려면 시간을 아껴야 했다. 밤이 깊고 캄캄할수록 호롱 등잔불의 안온함은 그 깊이를 더했다. 무언가 포근하고 따스한 느낌이 드는 불빛 때문에 당시 읽던 책이나 독서 경험에 대한 기억 역시 대체로 행복감이 넘치는 듯하다.

더구나 대설(大雪) 무렵 눈이 내리는 밤이면 그 행복감은 훨씬 더 했다. 일찌감치 제주 특유의 굴묵에 바짝 마른 말똥과 보리 까끄라기를 섞어 가득 밀어 넣고 불을 지펴서 뜨근뜨근하게 달구어놓은 방, 등잔불 밑에서 책을 읽는 밤에 눈까지 내린다면 그야말로 환상적인 일이었다. 책 속에 깊이 빠져 있다가 소피를 보려고 문을 열고 나갔는데, 언제 내렸는지 세상이 온통 하얀 눈으로 덮어 있다면 그 순간의 놀람과 신비감은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내가 어렸을 때 살던 집은 야트막한 언덕 솔숲으로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는 동네 맨 남쪽 끝의 외진 곳이었다. 지금도 가끔 생가를 찾으면 동남쪽 속칭 왜가시낭 동산으로 시작하여 남쪽으로 웃뭍 동산과 서북쪽으로 철랭이 동산까지 솔숲으로 이어져 안온감과 차분함을 느끼게 한다.

내가 어릴 적에 겨울에는 정말 눈이 많이 내려 쌓였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제법 쌓이면 솔숲에서 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너무도 고적하고 쓸쓸해서, 어린 마음에도 책장을 넘기는 걸 멈추고 그 소리를 기다리곤 했으며, 솔숲을 휘몰아 가는 바람소리에는 눈 숲 어디선가 잔털을 부 풀린 채 졸고 있을 산새가 그려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겨울철 책 읽기의 행복은 배가 되지 않았는가 생각한다. 옛말에 삼여(三餘) 라는 말이 있다. 책 읽기에 좋은 세 때의 여가를 가리키고 있는 말이다. 옛사람들은 밤과 비 오는 날과 겨울을 독서하기에 맞춤한 때로 여겼던가! 밖은 춥고 집안은 따뜻해 꼼짝하기 싫은 겨울이야말로 나 홀로 침잠(沈潛)하여 책 읽기에 안성맞춤이 아닐 수 없다.

우리 학교와 가정에서는 청소년 때부터 독서를 몸에 배게 해야 한다. 시와 시조를 읽으면서 비유와 상징을 깨우치고, 소설은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역사 이야기로 삶의 지혜를 깨우치게 해야 한다. 그리고 독서의 힘은 독해력을 증진시키며, 상상력을 자극시키고, 논리력을 구축해 가고, 언어 구사력이 신장되어 발표력이 강화되고, 수학 공부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며, 자기주도학습을 완전히 몸에 익히게 된다고 본다.

청소년의 독서 수준이 높아지면 높은 수준의 문학 작가와 훌륭한 과학자가 나올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겨울방학 동안 우리 청소년들이 부모와 함께 책 읽기에 침잠하는 기쁨을 만끽하게 한다면 미래가 남다르게 풍요로운 것이다. 이 겨울 책을 펼친 청소년의 모습은 눈꽃보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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