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헤치고 깨어난 그곳엔 트럼펫 소리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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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닭머르>닭 머리 닮은 닭머르 해안서 두번째 시간 가져
어여쁜 골목골목 지나 신촌 큰물까지 여행해

신촌 큰물    이용상

 

큰 물은 9대째를
신촌에서 살게 하네
3천평 신촌포구
그 안에 신촌 큰물,
달 하나
대물림 하며
신촌에 살게 하네


조상님네 연이은
연륙의 장삿길은,
아직도 먼 바다에
무슨 연유 있는 건지
간간한
소문만 도네
큰물이 혼자 사네


한평생 장삿일을
큰 놈에게 물려주고
서울로 부산으로
공장따라 떠돌다가
한 사발
목마름같이
먼 바다를 보는 버릇


빈 손으로 돌아와도
아내처럼 다가와서
고맙다,
고맙다,
살아와서 고맙다
큰물은
갈 곳이 없어
여기 눌러 산다 하네

▲ 두 번째 바람난장이 지난 7일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에 위치한 닭머르해안길에서 펼쳐졌다. 사진은 닭머르해안길의 갈대밭 사이로 펼쳐진 나무데크길 모습.

함덕이라는 팻말을 붙이고 달려온 버스에 앉아 그 버스가 지나왔을 길들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함덕, 조천, 신촌, 삼양, 화북 그리고 동문로터리 한 번도 가보지 않아 낯설고 경이롭고 영원히 가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신촌이, 조천이, 함덕이 입안에서 굴러다녔다.


1박 2일 성산포로 수학여행을 가다가 순식간에 신촌을 지나쳤다 . “어! 여기가 거기네”


짧은 찰나가 영원처럼 가슴에 들어와 박혔다. 신촌이라는 정거장 팻말이 내가 사는 곳에서 너무나 가까워서 놀랍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했었다.


신촌엘 간다.


옛날 원나라의 황제가 자식을 얻기 위해 제를 지낸 후 아들을 얻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남생이 못을 지나 영등할망이 내려온다는 영등막 제터도 슬며시 지나니 닭머르 해안길이 나타났다. 어떤 것들은 너무 가까워서 이곳에 이런 게 있었다니 생경하기 까지 한 풍경들이 있다.


닭머르, 닭머루, 신당(神堂)을 나타내는 신당의 언덕 이라는 뜻의 당모르, 당모루 등 명칭표기도 제각각이고 유래에 대한 정설도 없지만, 해안선의 모양이 닭이 둥지(텅에) 안에서 알이나 새끼를 품은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닭머르’라 불린다.


머르는 언덕이라는 제주사투리로 닭과 머르가 합쳐져 표준어로 닭머리 언덕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닭의 머리는 현재 전망대가 세워진 곳이고 탐방로는 닭의 목을 나타내고 전망대 좌우로 바다 쪽으로 튀어나온 둥싯한 언덕 부분이 닭의 날갯죽지인 셈이다.


정자 좌측에 조그맣게 비쭉 올라온 검은 현무암 바위가 닭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닭머르 해안으로 불리는 줄 아는 사람도 있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 바위를 버섯바위라고 부른다.


닭머르 해안에서 신촌 포구를 지나 어촌계까지 1.8km 구간은 해양수산부와 한국해양재단이 선정한 걷기 좋은 해안길인 ‘해안누리길’로 조성되어 있다.


정유년 붉은 닭의 기운을 느끼고자 우리는 이곳에서 두 번째 난장을 펼쳤다.


故 이용상 시인의 신촌큰물 작품을 부인인 김향진 시인이 낭송했다. 달하나 대물림 받았다는 시인의 시구가 검은 현무암을 따라 오른쪽 날갯죽지에서 왼쪽 날갯죽지로 아프게 휘어진다.


트럼페터 김영웅 선생님의 연주로 니니로소의 적막의 블루스(밤하늘의 트럼펫)와 브라이언 케네디가 부른 You raise me up을 들었다.


옷이 젖지 않을 만큼 간간이 내리는 빗방울을 피하느라 옴막한 현무암 아래 오종종 모여서서 트럼펫 소리를 듣고 있으니 닭 텅에 안에 들어앉은 듯 아늑해졌다. 얼마나 오래 저 트럼펫을 불었던 걸까? 트럼펫 소리가 그대를 지나온 시간처럼 파여갔다.


허영숙 사진 작가가 숨소리도 내지 않고 셔터를 누른다. 시낭송을 하던 김향진 시인 앞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던 김영웅 선생님 앞에서 파도 소리, 바람소리에까지 온통 귀를 빼앗긴 관객들에게까지 연신 찰칵 소리를 질러댄다. 절정의 순간 한 컷을 뽑아내려는 작가의 바쁜 손놀림에 마음이 뭉클거린다.


김해곤 화가도 바쁘다 좋은 그림의 구도를 잡느라 혼자 이곳저곳 휘갈아 다니며 고뇌하는 모습이 먼바다에서 떠내려온 섬 같다.

 

▲ 김해곤 作 ‘바람의 날개로 알을 품다’

이렇게 우리의 난장은 신촌큰물로 옮겨지며 골목 골목을 헤집어 다녔다.


골목이 끝인가 싶으면 또 둥근 골목이 또 둥근 골목, 골목들이 미로처럼 놓여 겹겹 꽃처럼 피어났다. 어느 골목에 찻집들이 어느 골목에 게스트하우스가 어느 골목에 공작소들이 어여쁘고 어여쁜 돌담에 둘러싸여 활짝 손을 내밀었다.


저 골목 모퉁이에 기대어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싶었다. 골목 끝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베롱베롱한 돌멩이 숨구멍이나 헤아리다 괜스레 슬리퍼나 철퍼덕 거리며 되돌아오고 싶어진다. 봄이면 골목축제도 한다 하니 이곳의 또 다른 숨은 아름다움이 선과 면으로 이어지면서도 텅 빈 이 골목이 아닌가 싶다. 이용상 시인이 빈손으로 돌아와도 살아와서 고맙다고 손을 내밀던 신촌 큰물은 너무 투명하여서 물의 속살이 다 비쳐 보였다.


신촌은 용출수가 풍부한 곳이라 바닷가에 물이 많아 어장도 넉넉하다 한다. 큰물 밖을 나오니 조그맣고 아담한 신촌 포구에 여러 척의 작은 배가 묶여 있다.


포구 앞 돌기둥만 남은 주인 없는 집터가 수선화를 함뿍 피어 놓은 채 오롯하다.


향기를 맡아 보느라 고개를 숙이는 오승철 시인의 코끝에 봄이 울컥 쏟아진다.

 

글-강영란 시인
그림-김해곤 화가
트럼페터-김영웅
사진-허영숙
시낭송-김향진 시인


**다음 바람난장은 14일 서귀포 남원읍에 위치한 위미 동백숲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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