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처럼, 노래처럼, 그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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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미/수필가

성탄절 미사를 보고 집으로 돌아온다. 분주할 것도 야단스럽게 보낼 일은 아니지만 너무 미미한 성탄절이 될 거 같아서 훌쩍 어느 어디로 가고 싶다.


여행을 떠나 온 것 같은 이국적인 분위기, 인근 호텔로 간다. 가끔 투숙객처럼 앉아서 커피도 마시고 셰프가 만들어주는 계절 특선 요리도 먹으면서 새로운 여정에 취하는 곳이다.


마침 성탄절 이벤트로 서울에서 내려 온 뮤지컬 가수들의 현란한 무대를 열어 놓았다. 크리스마스 휴가를 온 이들이 자유롭게 앉아서 신명나게 부르는 가수들에게 시선이 꽂혀 있다. 가만히 앉아 있기엔 들뜬 몸을 주체하지 못해 모두들 가볍게 흔든다. 나도 덩달아 구둣발로 토닥토닥 박자를 맞춘다. 낯선이들과 리듬 안에서 하나가 된다.


흥에 겨워 몸을 가볍게 흔드는 노년의 부부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여유롭게 노년을 즐기는 모습이 크리스마스트리에 걸린 불빛처럼 반짝거린다. 남을 의식하지도 않고 경박하지도 않은 아이 같은 몸놀림이 얼마나 조화로운지…. 시간을 잊은 듯 한 참을 즐긴다. 저들은 나이가 정지된 듯하다.


어디에서든 흐트러질까봐 자세를 고치곤 하는 나다. 틀에 갇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는 내가 저들에게 동화된다. 저 부부는 어두운 시절이 있었을까. 이름도 모르고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는 저 노년의 부부를 통하여 화사한 통로를 발견한다. 미완의 삶을 채울 자본을 얻은 기분이다.


문정희 시인의 “나무학교”를 읊어본다.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해마다 어김없이 늘어 가는 나이
     너무 쉬운 더하기는 그만두고
     나무처럼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중략)


굳이 숫자일 뿐이라는 나이를 염두에 두어서 사는 게 무슨 소용이랴.


얼마 전 경기도 미사리에 있는 라이브 카페에서 가수 S의 노래를 들었다. 서울에 사는 친구 부부가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했다고 특별한 곳으로 안내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다. 그의 노래 “사랑이야”를 주저없이 신청해서 들었다.


카페 안은 그의 노래에 흠뻑 취해서 고요하다. 꼭 자기들의 사연을 노래하는 것 마냥 몰입되어 미동도 않는다. 50대 소녀(?)인 내가 10대 소녀처럼 “오빠”를 부르며 환호 할 수는 없었지만, 라이브로 듣는 그의 목소리에 나도 주체하지 못해 따라 부르고 있었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친구 부부도 어깨에 살포시 손을 올려놓은 모습이 보인다.


새삼, 저들은 얼마나 많이 견디었을까. 서로를 얼마나 보듬었을까. 조율이 잘된 친구 부부의 화음이 노래만큼이나 아름답다. 카페 안은 박수 소리로 가득이었다.


한 해의 마지막 날, 누구든지 마지막이라는 의미가 크게 다가 올 것이다. 잘 살아냈는지 아쉬움과 의미 있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공존한다. 무엇으로 새길까.


얼마 전에 오픈한 S갤러리를 간다. 여백을 가득 채운 초록빛깔, 그 사이 사이 나부끼는 흰색의 점들. 혼의 그림 “속삭임” 앞에 머문다.


바람이 부는 날 숲속의 온갖 것들은 대화를 한다. 화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 추워”


 “나 좀 잡아줘.”


삽시간에 바람으로 숲은 혼돈이지만 하늘을 향해 꼿꼿이 서 있던 나무들은 서로 몸을 비빈다. 화가는 그림 한 점을 완성할 때 마다 사랑이 화두였으리라. 한 참을 그림 앞에 머물다 돌아오는 길, 위로가 된다.


다시 시작이다. 무엇을 붙잡으려 치닫기만 한 삶, 얼마나 절실했던가. 마땅치 않은 결과 때문에 늘 막막하다. 내가 세워 놓은 계획, 내가 허물어도 되는 것인데 그것마저도 못하고 부여잡고 있다. 조금 모자라도 살며시 놓아버리자고 나와 타협한다.


올 한 해를 나를 끌어주는 신께 온전히 맡긴다. 시처럼, 노래처럼, 그림처럼 살고 싶다면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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