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다움’으로 제주를 디자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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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 서울과학종합대 초빙교수/논설위원

‘제주도가 천 년 만 년 사랑받는 섬이려면 자연 모습 그대로 두는 것이고, 올레길에서 아스팔트와 각목을 걷어내 돌이 울퉁불퉁하고 잡초 드문드문 난 옛길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런 길이 그지없이 낭만적이며 발바닥 지압에 효과가 최고라는 것을 어찌 공무원들만 모를까. 나는 제주도민이 되고 싶다. 제주의 빼어난 풍광 속에서 작가의 말년을 보내다가 그 땅에 뼈를 묻고 싶다. 행정적으로 제주도가 망쳐져 내가 그 꿈을 접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는 태백산맥으로 유명한 조정래 선생이 지난해를 보내면서 제주에서 진행한 특강 중 한 소절이다. 이 강의를 하시기 전 선생은 서귀포의 혁신도시를 상징하는 고층 아파트와 그것을 본 따서 만들어 놓은 게 분명한 근처의 아파트 정글을 보면서 서귀포의 지인들에게 심한 꾸지람을 하셨다. ‘올레가 비롯된 서귀포에서 이 무슨 야만의 극치인가’라고. ‘무지막지한 도시의 깡패들이 저토록 뻔뻔하게 무리를 짓기까지 서귀포의 문명인들은 과연 무엇을 했느냐’고.

이 와중에서 다급하게 만들어진 서미모(서귀포의 미래를 생각하는 시민모임)는 한라산을 가리고 바다를 등지게 하는 서귀포시지역 고층빌딩의 횡포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제주도의회에 제출된 제주도의 도시관리계획(안) 중 서귀포 상업지구의 고도를 현행 40m에서 45m로 높이려는 계획에 대해 ‘현행 고도를 더 낮춰야 한다’는 시민의견을 제출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건은 제 347회 제주특별자치도의회의 환경도시위원회(2016.11.25.)에서 심의 의결되었고, 본회의 의결을 통해 제주특별자치도지사에게 통보되었다. 향후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등의 절차를 거쳐서 최종 결정, 고시될 것으로 보인다. 큰일이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의 부끄러움이 크지만, 이제라도 서귀포다움에 대한 철학 없이 급하게 진행된 토목 위주의 일방적인 개발 정책을 지양하고, 서귀포의 미래를 생각하는 지속 가능한 발전의 전략으로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부디 이 일을 받아 든 도시계획위원들이 산북에 있는 회의실에 앉아서 도면을 보고 통상적인 의사결정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지난번에 동 위원들이 40m로 고도를 상향시켜 줌으로써 서귀포시지역 곳곳에 골목대장처럼 진을 치게 된 건물들의 동서남북을 직접 와서 살펴보시라. 그들이 팔짱을 끼고 오만방자하게 버티고 서서 시민들의 소박한 조망권을 얼마나 무시하고 어떻게 방해하고 있는지. 모쪼록 이번에는 한라산을 넘어와 서귀포의 현장을 확인하고 실상을 파악한 후, 시민과 전문가들로부터 우러나오는 서귀포의 소리에 귀 기울이시라. 서귀포 시민들의 생각과 마음이 어떠한지를. ‘내 가진 것 하나 없지만 저 한라산만 바라보고 있으면 저절로 배가 불러 온다’는 진짜 서귀포 사람들의 한평생 염원을.

문득 2004년에 열렸던 서귀포시의 ‘생태도시 국제포럼’이 떠오른다. 이 포럼을 통해 외국의 생태도시들을 살펴보고, 그들의 경험을 배우며, 천혜의 자연조건을 바탕으로 한 단계 더 발전된 생태도시로 변모하고자 했던 서귀포의 각오가 새삼스럽다.

‘서귀포시는 인구 8만의 작은 도시지만 하수처리율 91%, 빗물과 오수 분리율 74% 등 환경기초시설이 전국 평균을 훨씬 웃돈다. 무엇보다 자연여건이 빼어나다. 유네스코는 2002년 한라산을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하면서 핵심구역에 공원 밖의 서귀포시내를 가로지르는 효돈천과 해안의 범섬·문섬·섶섬 등 3개 섬을 포함시켰다. 더 나아가서 서귀포시는 하논 일대 17만여 평을 생태숲으로 복원할 계획이다.’

이 즈음에 서귀포시는 천지연 계곡 위에 위태롭게 들어서 있던 호텔과 건물 97동을 사들여 허물고 그 자리에 공원을 만들었다. 그 다음 해에 공원 상류의 솜반천에는 은어와 참게가 돌아왔다. 이제는 은어처럼 맑은 사람들이 마음 놓고 살아가는 서귀포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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