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 속 붉은 눈…오씨 삼춘 할망의 보석 같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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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위미리 동백꽃 마을> 열다섯 시집와 농사짓던 故 현병춘 조모 해풍 막으려 버둑에 뿌린 꽃씨가 숲 이뤄
▲ 임성호 作 낙화시절.

<동백꽃 시낭송에 눈발이 펏들펏들>


정이월 다가고 삼월이란 노랫소리
팽팽한 고무줄 따라 치맛자락 펄럭인다
때로는 사까다치기 허공의 맨다리들

하늘 아래 동백나무 그 아래 허씨 삼촌
“돌락돌락 가달춤 추당 거시기 떨어진다”
누이들 놀다간 자리 슬쩍 가 훔쳐봤네

거짓말 아니었네 햇살 몇 줌 그 언저리
고무줄 끊고 내뺐다 돌아온 중년의 사내
             딸아이 초경만 같은 동백꽃을 주워드네             

 

                                                            -오승철의 ‘고향 동백꽃만 보면’ 전문


위미리는 동백꽃 마을이다. 아니, 우리나라에서 ‘동백꽃 마을’ 하면 위미리를 꼽아야 할 것이다. 130여 년생 이상의 나무 600여 그루가 울타리를 두르고 있어, 마치 새의 둥우리 형상을 하고 있다. ‘돔박낭 강알’로 아직까지 불리는 이곳 명칭 또한 더없이 정겹다.

 

▲ 서귀포시 남원읍에 위치한 위미 동백꽃 마을에서 이경숙 시인이 오승철 시인의 ‘고향 동백꽃만 보면’을 낭송하고 있다. 사진은 윗줄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경숙 시인, 고해자 수필가, 강영란 시인, 임성호 미술가, 오승철 시인.

길 따라 한 바퀴 걷다보니 어느새 그 자리, 15분 정도의 소요다. 이 울타리 안엔 자손 서너 가구가 오순도순 이마를 맞대어 살고 있다.


갓 떨어진 동백꽃이 눈길 잡아끈다. 군락을 누비는 직박구리, 까치, 동박새들이 건네는 인사에 강추위를 녹여본다. 한 줄로 선 키 큰 나무들, 알싸한 바람에게 길목까지 내주고 나서야 먼 꼭대기서 눈길을 보낸다. 수령만큼 성한 데가 흔치 않다. 뭉툭뭉툭 앉은 옹이마다 시멘트나 페인트로 메워진, 대역 반창고에선 왠지 파스냄새 풍겨올 듯하다.

 

동백숲도 산 같이 둘러앉아 휘몰아치는 눈바람에 귓속말이 길어진다. 동백나무를 에워싼 낮은 돌담 위로 터 잡은 담쟁이들, 잡은 손에 힘을 더 보태보지만 뭇바람에 휘둘리는 신세다.
급랭해진 날씨 탓에 예정된 가야금연주가 취소돼 못내 아쉽다. 숲 사이로 풀지 못한 가락인 듯 젖은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 딸아이 초경만 같은 동백꽃을 주워드네’


오승철 시인의 고향, 그 동백꽃 앞에서 이경숙 시인이 이 시를 낭송하는 모습은 '바람 난장, 예술이 흐르는 길’ 취지에 걸맞는 행사다. 때마침 눈송이도 펏들펏들 춤을 추며 끼어든다.


이곳 동백꽃 소식을 어찌 접했는지 날씨에 아랑곳없이, 차량 두 대 동시 교차도 어려운 골목길에 관광차량들 북적거린다. 올레길 5코스의 길목이라 스탬프를 찍고 가는 이들도 종종 눈에 띈다.

 

위미 동백숲은 이곳 오씨 집안에 열다섯 나이로 시집 온 현병춘(1858~1933) 할머니가 농사짓기의 시작, 해풍을 막기 위해 버둑에 동백씨를 심으며 조성된 산물이다.


우연히 그 할머니의 손자인 오두입(73세)씨를 만나게 된다. 그냥 우연이 아닌 필연 같다. 난장 일행 중 한 분인 이상철 선생님, 제주시에서 버스로 출발하며 옆 좌석에 앉은 오씨와의 만남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할아버지께 들은 건데, 원래 이곳엔 소나무를 심었다가 송충이가 많아 베어낸 자리에 동백씨를 뿌리게 된 것”, “문화재에 걸맞게 관리도 잘해주고, 올레길에 벽화라도 좀 그려줘시민….” 동행한 오씨는 작은 소망을 바람결에 실어낸다.

 


-글 : 고해자 수필가
-그림 : 임성호 화가
-시낭송 : 이경숙 시인

-사진:허영숙


※다음 바람난장은 서귀포시 서흥동에 위치한 삼매봉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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