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망령과 새로운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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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방영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관광영어학과/논설위원

앙상한 가로수 사이로 바람 부는 거리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사람이 있었다. 지긋해 보이는 나이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건장한 몸이 높고 육중하였다. 우람한 몸집도 특징이지만, 그 몸을 감싼 밝은 황갈색 양복 정장에 눈처럼 하얀 구두도 특이했다.

남자의 흰 구두는 옛날 풍속도에서 첨단 유행을 따르는 멋쟁이로 자부하는 인물을 그릴 때 동원되는 도구가 아니던가. 돌아보니 그 황갈색 벽돌 건물 같은 사람은 가로수 옆에 기대놓은 낡은 자전거로 가서 흰 구두 신은 발을 번쩍 들어 올려 타더니 반대 방향으로 사라졌다.

과거의 유물을 모아놓는 박물관에서 빠져 나온 인형이 잠시 거리를 활보하는 환영을 본 듯 했다. 지나간 날의 모습들을 일깨우며 세상 흐름의 무상함을 애교스럽게 보여주었다고 할까. 그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 과거의 망령처럼 뿌리 깊이 박혀 기회만 있으면 표면으로 떠올라 우리를 지배하려고 하면서 사라지기를 거부하는 것들이 있다는 생각이 났다.

우리 조상들의 과거는 관의 수탈과 횡포를 견디고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오랜 세월 권력에 대한 숭배가 대대로 우리에게 각인이 되었을까. 그래서 우리는 권력 앞에 무조건 머리를 조아리고, 일단 권좌에 오른 사람들은 합리적인 직무보다 사욕을 채우는 기회에 더 마음이 끌리는가.

우리는 세금을 걷거나 사용함에 합리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믿는가, 양도세나 종합부동산세 등 현실적으로 다시 정비해야 되는 세금들을 바로잡으려는 움직임이 있는가, 국민들의 연금은 왜 함부로 낭비되는가, 한 눈에 옳고 그름이 뚜렷한 일을 온갖 궤변으로 덮고, 판결도 책임도 없이 세월만 잡아먹는 현실은 무엇 때문인가, 횡포로 이어지는 관아의 전통이 살아 있어서인가.

또 우리 사회를 뿌리 째 흔들던 ‘빨갱이’라는 단어는 어떤가. 국가적 폭력과 살인이 즉석에서 저질러지던 세상에서 위세를 떨치고, 한번 낙인이 찍히면 어떤 해명도 통하지 않고 목숨을 내놓게 했던 저주스러운 말, 지금도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는 짐승처럼 구석에 숨었다가 튀어 나와 생각이나 행동을 가로막고 처단하려는 활동의 신호탄이 된다.

과거를 샅샅이 분석하고 잘잘못을 낱낱이 가려서 반성하고, 어리석음과 편견을 명확하게 인식하여 정확한 기초를 깔고 나가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없기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인지. 밉고 싫고 뭉개어버리고 싶은 욕망이 만들어냈던 악마의 주문 같은 그 말에 아직도 기대는 심리는 무엇인가. 삶을 훼손하는 추악한 과거의 망령들은 무지한 편견을 애국이라 외치고, 생명의 존귀함을 모르면서 정의라는 말을 입에 올린다.

이기주의가 권력을 잡아 생명을 위협하면서 복종을 강요하고, 국민의 피땀 어린 결실은 물론 강과 산을 단숨에 무너뜨리는 것을 우리는 수차례 본다.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에서 바른 가치가 서고, 그를 실천할 구체적인 행동이 나올 것이다. 그런 희망을 구체화할 새로운 인간은 어디에 있을까. 도덕적인 동기에서 일을 시작하고 실천하면서 늪 같은 현실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가.

욕심으로 가득하여 사악해지는 대신, 모든 존재를 염려하는 덕스러운 마음이 사람은 물론 짐승과 초목들까지 그 혜택을 누리도록 할 사람은 영영 없는가. 헤르만헤세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증오보다 사랑이, 분노보다 이해가, 전쟁 보다 평화가 고귀하며, 또 우리에게 이롭다. 사람을 착취하기 위한 대상이나 자원으로 여기지 않을 때, 고통을 덜려는 마음이 있을 때 우리는 좀 더 오래 살아남을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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