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의 군대 이야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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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차수/수필가

오랜만에 남편 지인들이 놀러왔다.


저녁상과 함께 소주가 몇 잔 돌더니 단골 메뉴는 군대시절이다. 하도 여러 번 들어서 이젠 소재의 줄거리도 다 알 것 같다. 오늘도 그 추억을 재생하느라 생기가 돈다. ‘고생했다. 지독했다’ 하면서도 잊지 못하는 것이 군 생활인 듯싶다. 밖에는 눈이 내리고 한풍이 불어도 안방은 그들의 열기로 후끈하다. 시린 겨울 고향집 아랫목 같은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다.


얼마 전 언론이 달아오른 적이 있다. 최근의 일만도 아니지만 대통령이 바뀌면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고 검증을 거치는 과정이 국민의 관심거리가 된다. 중요한 걸림돌은 그들이 과거에 저질렀던 비리인데 핵심은 돈과 자식이다. 옳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챙겼거나 부당한 방법으로 병역기피를 시킨 일이 들통 나는 것이다. 처음엔 ‘아니다’ 라고 버티다가 대개는 부끄러운 모습으로 퇴진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를 지켜보는 백성들의 마음은 씁쓸하다. 대단히 훌륭하다고 여겼던 사람들의 치부를 보는 일은 유쾌하지 않다. 병역기피 뉴스는 더욱 가관이다. 입대를 면하려고 정상적인 신체를 손상시켜 팔팔한 젊은이들도 순식간에 병자로 만드는 상식 밖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네 서민의 입장에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다.


 
우리 집 옷장에는 수년전 아들들의 입었던 군복이 얌전히 놓여 있다. 두 아들은 모두 동절기에 군에 갔고 겨울만 되면 아직도 녀석들이 입영시기가 생각난다. 군에 입대하던 날 창밖에 첫눈이 피실피실 내리고 있었다. 혼자 논산 훈련소로 향하는 아들을 보내놓고 마당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두운 구름사이로 뿌려지는 눈은 쉽게 그칠 기미가 없어 괜스레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녀석이 떠난 후 시간은 더디기만 했고 나는 얼마동안 잠을 청할 수 없었다. 하룻밤에도 몇 번씩 창문을 열고 바깥 날씨에 온 신경이 곤두서곤 하였다. 날씨가 턱없이 차거나 바람이라도 불면 내가 훈련이라도 받는 듯이 몸이 떨렸었다. 하루가 지나면 나는 아들이 쓰던 책상에 앉아 달력에 감사의 빗금을 치기 시작했다.

 

아들은 6주간 고된 훈련을 마치고 첫 면회가 논산 훈련소에서 있었다. 그날따라 황산벌에는 하늘에서 세찬비가 쏟아졌다. 연병장은 진흙이라 면회 온 사람들의 여기저기서 미끄러지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잠시 있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숲속에서 훈련병들의 우렁차게 군가를 부르며 질서정연하게 걸어 나오자 관람석에 있는 부모들은 모두 일어서서 힘찬 박수를 쳤다. 간단한 행사가 끝나고 드디어 면회시간 비에 젖은 아들이 손을 잡았을 때, 아들과 나의 눈에서 눈물이 빗물에 섞여 볼을 타고 흘렀다. 점심을 먹고 몇 마디 정황을 다 듣지도 못했는데 집합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짧은 면회는 끝이 났다. 얼마나 서운하던지... 자꾸 뒤를 돌아보며 황산벌 벌판을 빠져 나와 귀향하는 기차에 앉아서는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 또 올렸다.


훈련을 마친 녀석은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강원도 모 부대 운전병으로 배정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그 추운 강원도, 산에는 눈이 어마 어마하게 쌓여 그만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는 편지를 받고 내 마음은 간이 녹는 듯하였다. 전방은 10월부터 눈이 내리고 이듬해 4월까지도 눈을 본다하였다. 아들의 군 복무를 하는 동안 제주에 사는 내가 강원도 일기예보에만 귀를 세우고 지냈다. 지역상 산새가 험하여 동절기 운전은 쉽지 않은 곳이기에 행여 탈이라도 날까 노심초사 했다. 강원도에 폭설이 내린다는 예보가 나오면 무엇에 쫒기 듯 초조한 마음은 가눌 길이 없었다. 그 무렵 아들과 나는 여러 통이 편지를 주고받았다. 손전화도 없던 때지만 복무중인 사람과 전화도 자유롭지 않고 편지가 유일한 소통 수단이었다. 내가 쓰는 글은 언제나 같은 말 ‘시작은 운전 조심  끝은 몸조심이었다. 

 

논산 연무대역 오래전부터 많은 남자들이 푸른 나이에 고된 생활이 머물러 있는 땅이다. 과거에 아버지도 육군이었고 현재 아들로 이어져 부자지간의 추억을 함께 공유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오늘도 논산역에는 젊은이들과 그 들 부모들이 수 없이 드나들고 있으리라. 이별과 아쉬움이 머무는 곳. 지금도 훈련소에서 함성을 지르며 행군하는 청년들과 밤을 세이며 그들이 무사하기를 기원하는 가족이 있는 한 대한민국을 지탱해 주는 튼튼한 힘이 일부는 그곳에 있다.


군 동기들의 우정은 각별난 듯하다.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고통의 시간을 견딘 중년남자들의 과거가 술상위에 넝쿨로 피어나고 있다. 행군하다 탈진했던 일, 달밤에 보초 서며 눈물 짖던 추억들의 마른 가슴을 적시는듯하다. 인생의 초입 나라의 부름을 받았던 남자들, 땀 흘려 의무를 다한 그들이기에 취기 오른 낯빛은 불빛아래서 한층 더 붉어지고 있다.


이제 저들에게 남아있는 임무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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