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나무 방장대를 짚고 서 있는 상주.

부모를 위해 상·장례 때 짚는 지팡이, 방장대.

 

▲방장대에 쓰는 대나무와 머귀나무


머귀나무는 머구낭, 머귀남, 민머귀나무, 매오동나무라고 하며 제주에서는 머귀낭이라 부른다. 머귀나무는 제주도와 남해안 지방의 해발 150~1,100m에서 자생한다. 머귀나무는 외국인 경우 일본과 대만, 중국, 필리핀에도 분포한다. 나무 씨는 검은색으로 광택이 나며 향기가 적고 매운맛이 있는데 새와 짐승의 먹이가 된다. 나무의 높이는 약 6~15m까지 자라고 줄기와 가지에 굵고 예리한 5~7mm 정도 길이의 가시가 있어 줄기를 보호한다.

 

이 나무는 양지바른 곳에 먼저 자리 잡는 속성이 있다. ‘월인석보(月印釋譜)’에 ‘오동(梧桐)은 머귀’란 기록이 있으며, 많은 문헌에 머귀나무는 오동나무의 옛 이름이라고 기록돼 있지만 오동나무 모양새나 쓰임새에 있어서 서로 관련이 없다. 그러나 옛사람의 문헌에 ‘오동은 머귀’라고 기록하는 바람에 대체로 오동나무로 관을 만들며, 관을 만들다 남은 오동나무 자투리로 상장대를 만들던 옛 시대의 영향이 남아 오동나무가 구하기 어렵게 되자 오동나무와 이름이 같은 머귀나무로 상장대를 만든 것이다. 제주에서는 아직도 머귀낭으로 어머니상(喪)의 상장대로 쓴다. 


상장대를 제주에서는 방장대라고 하는데 상·장례 시에 짚는 지팡이이다. 성호(星湖) 이익(李瀷)은 “상중(喪中)에 지팡이가 있는 것은 병든 몸을 부축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한다. ‘예기(禮記)’에 ‘저장(?杖)은 대나무로 만들고, 삭장(削杖)은 오동나무로 만든다’고 하였다. 저장은 아버지를 위한 상장대이고, 삭장은 어머니 장례의 상장대이다. ‘가례(家禮)’에 ‘검은 대나무 지팡이는 대나무를 사용하며 높이는 가슴과 나란히 하는데 밑동을 아래에 둔다. 지팡이는 병자(病者)를 부축하는 것으로 병든 마음을 따라 일어나고 지팡이의 높낮이도 마음을 따라 일어나기 때문에 마음으로 결정한다. 그러므로 지팡이 높이는 가슴과 나란히 해야 한다. 밑동은 뿌리, 즉 근본을 말한다.


아버지를 위하여 지팡이로서 대를 사용하는 것은, 아버지가 자식의 하늘이니, 대가 둥근 것도 또한 하늘을 본떴기 때문이다. 안팎에 마디가 있는 것은 아들이 아버지를 위하여 또한 안팎의 슬픔이 있음을 본뜬 것이요, 또 (대나무가) 사철(四時) 동안 변하지 않는 것은 자식이 아버지를 위하여서는 추운 절기(寒節) 더운 절기(溫節)가 지나도 변하지 않음을 본뜬 것이다. 대나무의 그런 까닭으로 이를 사용한다.


어머니의 상장대의 삭장은 오동나무를 깎아서 만드는데 위는 둥글며 아래는 네모나다. 어머니를 위하여 동(桐)을 사용하는 것은 동(同), 즉 같음을 말함이다. 속마음으로 슬퍼함이 아버지에게와 같음을 취한 것이다. 밖에 마디가 없는 것은 집안에 두 어른이 없고 밖으로 하늘을 따르는 것을 말한 것이다. 오동나무를 깎아서 아래 네모나게 한 것은 어머니를 땅으로 생각한 때문이다. 지팡이는 모두 밑동을 아래로 하는데 그 본성을 따르는 것이다. 


제주에서는 아버지상이면 왕대를 6절 7통으로 자른 지팡이를 썼다. 어머니상이면 제주에는 오동나무가 귀했기 때문에 머귀나무로 만들어 썼다. 상주가 짚는 지팡이 곧, 상장대를 무엇으로 만들었냐에 따라 상주와 고인의 관계를 알려주는 중요한 상징물이다.


이익의 말에 의하면, 옛날에 관(棺)은 반드시 오동나무를 썼는데, 입관(入棺)하여 빈소(殯所·시체를 입관한 후 장사지낼 때까지 안치하는 곳)에 안치한 다음 날에 성복(成服·상복을 입는다는 말)하였고, 상중(喪中)에 쓰이는 지팡이는 관재(棺材)에서 남은 오동으로 만들었으니, 그 편리함을 취한 것이다. 이는 옛날 사(社)에서 밤나무(栗)를 썼던 것과 같은 것으로 별다른 뜻이 없는 것이다.


‘성호사설(星湖僿說)’에 인용된 ‘가례집설(家禮集說)’에는, “오동나무가 없으면 대신 버드나무를 쓴다.”라고 했는데, 버드나무 유(柳)는 같을 유(類)의 뜻이다. 이는 어머니는 아버지와 동등하다는 뜻에도 부합되는 것이다. “가난한 자의 초상에는 오동나무 관을 쓰기가 어려우니, 나라에서 별달리 서인(庶人)의 규례를 만들어 버드나무를 쓰게 하는 것도 무방할 것이다.”라고 하여, 가난한 자를 위해 버드나무 관(棺)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 대나무 상장대와 짚으로 만든 복심.

▲신화에 등장하는 상장대


상장대는 신화에도 등장한다. ‘바리공주’ 신화 인천 도정희본에 머귀나무와 대나무를 상장대에 비유한 내용이 나온다. 


뜰 아래로 내려서서 들이숙배 내숙배 삼삼은 구숙배로 드리시고 전라도 왕대씨는 아바님 되오시고 뒷동산 머구나무는 어마님이로소여니다


(생략…)
전라도 왕대나무는 아바님 돌아가시면 양 끝 짤라
짚두건 숙여 쓰고 삼년을 짚으시면 아바님이로소여니다
뒷동산 잎 많은 머구나무는 어마님 돌아가시면 네 끝 모나게 짤라서
굴건 제복 갖춰 입고 삼년을 짚으시면 어마님이로소여니다


(생략…)
뒷동산 잎 많은 머구나무에 아침저녁 문안을 드리시옵고 우여 슬프시다
또 제주도 신화 ‘차사본풀이’에도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상장대에 더욱 극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날이 밝자 강림은 부모님에게 돌아온 인사를 갔다.


“아버님아, 제가 없으니 어떤 생각이 납디가?”


“설운 자식 없어지니 마디마디 생각나더라.”


“설운 아버님 돌아가시면 여섯 마디 왕대로 상장대(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짚는 대나무 지팡이) 를 마련하여 대나무 마디마디 아버지 생각을 하겠습니다. 자식의 모든 것을 풀어 너그러이 해주셨으니 상복 자락 밑을 감치지 않고 풀어놓아 입고 연 삼 년 그 은공을 갚도록 하겠습니다.” 


“어머님은 제가 없으니 어떤 생각이 납디까?”


“설운 아기 없어지니 먹먹해지더라. 저 올레를 걷다가도 자주자주 생각나더라.”


“어머니는 돌아가시면 동쪽으로 뻗은 머귀나무로 상장대를 마련하여 먹먹하게 생각하고, 머귀나무 촘촘히 난 가시처럼 촘촘히 자주자주 생각하겠습니다. 어머니는 자식의 밑을 항상 감춰 주었으니 밑단을 감친 상복을 입어 어머니 은공을 갚겠습니다.”


성호 이익의 말을 다시 정리하면, 원래 상장대는 오동나무 관을 만들다 남은 관재를 쓰던 것이 그 유래인데 후에 오동나무가 귀하고 비싸서 구하기가 어렵게 되자 대나무를 쓰거나 오동나무와 음이 같은 머귀나무를 썼다. 버드나무로 상장대를 해도 무방하다는 말이다. 무속신화에 나오는 상장대에 대한 이야기는 유교의 상?장례에서 전파된 것을 무당의 입을 빌려 서사적으로 꾸민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