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섯 번째 바람난장이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에 위치한 진안할망당에서 진행됐다. 사진은 넋풀이로 진행된 박연술씨의 살풀이 모습.

제주에서 돌은 모든 경계에 피는 꽃이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인 산 담에도 안과 밖을 이어주는 올레 담에도 바다와 육지의 경계인 포구에도 현무암은 묵묵하게 피어난 검은 꽃이다.

 

돌 안에서 태어나 돌 안에서 살다 돌 안에서 죽는 삶이 제주 사람들이 지닌 운명이다.

 

중국으로 가는 바닷길 한가운데 놓인 제주는 땔감과 식량을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여서 고려 말부터 왜구의 침입을 수없이 받아 왔는데 이에 사람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돌로 성을 쌓아 왜구에 대항하였다.

 

그중에 수산진성은 우도와 연결되어 있어 차귀진성과 더불어 중요한 방어시설의 거점이 되었다.

 

수산진성을 쌓을 때 자꾸만 성이 무너져 열세 살 어린 원숭이띠 여자아이를 제물로 바쳐서 무너지지 않는 성을 쌓았고 그 소녀의 넋을 기리기 위해 당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진안할망당이다.

 

마음 안에 쌓인 우묵한 역사의 어느 날이 우리를 거기로 이끌었을까?

 

눈발 아슴아슴한 날 신이 걸어 다닌다는 신궁올레의 좁짝한 길을 따라 할망당 안으로 들어가려니 신의 속눈썹인가 송악넝쿨이며 대나무, 동백꽃 푸른 초록이 발길을 휘감아 감은 눈꺼풀처럼 캄캄하다.

 

   
▲ ▲ 허영숙 作 ‘동백 두 번 피다’.◀ 유창훈 作 ‘진안할망당 살풀이춤’.

신당 앞을 지키는 커다란 신나무가 돌을 품어 안은 채 콩짜개 덩굴 초록 눈물 방울을 대롱이며 매달고 있었다. 누가 다녀갔을까. 이끼 낀 바위들 사이로 넣어놓은 지전이 간간한 눈발에 젖어 어디 멀리 다녀온 흰 버선 같다.

 

어디선가 온 손님이 궁금했는가. 시끄러운 안부를 묻는 직박구리, 동박생이들 사이로 나무꽃 멤버인 박연술씨가 살풀이 수건 위에 붉은 동백 서너송이를 받쳐 올리고 장구를 둘러멘 하민경씨와 소리를 하시는 전은숙씨를 앞세워 할망당 안으로 들어선다.

 

장구소리가 사무치게 오르내릴 때마다 풀렸다 감아올렸다 살풀이 수건이 안개처럼 흩어졌다 모인다.

 

산 넘고 바다 건너 이산 저산 헤매다가 넋이라도 오셨으면 떡반에다 모셔 놓고 전은숙씨의 소리가 할망당 앞에 애가 타게 울릴 때 바라보는 우리는 희어서 희어서 설운 꽃잎을 보다 쏟아지는 눈물을 삼키느라 아랫입술을 사려 물었다.

 

   
 

내게 일어난 적 없는 일들이 우거져 나를 물들였다.

 

십여 분의 시간 동안 먼 백 년 전쯤 어느 날을 다녀온 듯 온몸이 아팠다.

 

박연술씨의 춤을 보면서 내 영혼 어디가 흰동백 쟁강쟁강 떨어지는 소리로 운다. 하민경씨의 장구채 소리가 내 뼛속 구석까지 서럽게 멍들게 했다.

 

“나만 숨 쉬어서 미안해! 나만 이렇게 살아 숨 쉬어서 미안해!”

 

가 닿을 수 없는 그곳에 자꾸만 소멸해 버리는 용서를 부질없이 중얼댄다.

 

소녀의 뼈가 돌을 껴안았는가.

 

할망당의 역사와 함께 해온 신낭이 돌과 칡넝쿨과 한 몸이 되어 할망당을 지킨다.

 

   
 

그냥 마음이 그래서 그냥 그래서 도돌한 낭 껍질을 쓰다듬어 주고 온다.

 

돌아오는 길 수산진성 성벽 위를 걷고 있으니 사기그릇 사금파리 같은 게 성벽 사이 박혀있다.

 

내 발을 감아대는 거미줄 같은 잡초 덤불들 터벅이며 걷다 보니 왜 이곳에 태어나서, 왜 그 시절에 태어나서, 왜 꽃답게 꽃답게 피어날 그 나이에... 연신 쏟아지는 내 물음에 답하듯 허물어지는 성벽 위 돌 하나 “더 이상 묻지 마라” 굴러떨어진다.

 

글-강영란 시인

사진-허영숙 사진작가

그림-유창훈 화가

무용- 박연술

장구(장단)-하민경

소리- 은숙

 

※ 다음 바람난장은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 위치한 행기머체에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