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철 들엄수다’…경사스러운 일이 많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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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제의적 축제 제주서만 열려…풍요·풍어 빌며 기쁨 알려
▲ 제주는 해마다 입춘을 맞아 1만 8000신에게 풍요를 비는 굿판을 벌인다. 사진은 지난 입춘굿본굿의 모습.

사계절은 봄으로부터 시작된다. 


봄이 언제부터인가라는 물음에는 사실 마땅한 답은 없다. 달력으로 계절을 가르면 통상 3~5월이므로 3월 1일부터로 볼 수도 있고, 입춘이나 정월을 봄의 시작으로 볼 수도 있다. 미국이나 적잖은 유럽국가에서는 3월 21일 즈음을 봄의 시작으로 여긴다. 북반구 온대지역을 기준으로 하면 이 시기의 날씨가 가장 봄 같다 여겨지기 때문이다.


기상청이 보는 봄의 시작점은 다르다. 기상청이 발간한 한반도 기후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봄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1일 평균 기온의 9일 이동 평균 값이 섭씨 5도 이상으로 올라간 뒤 5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첫 번째 날” 쉽게 말해 평균 온도가 5도 이상 올라가 일정 기간 동안 떨어지지 않으면 봄의 시작으로 보겠다는 말이다. 그래서 기상청에는 봄의 시작 날짜가 없다.


기상청에서 밝힌 봄과 사람들이 체감하는 봄도 다르다. “봄이 왔다지만 봄 같지 않다.”, “꽃샘추위에 설 늙은이 얼어 죽는다.”, “봄추위가 장독 깬다.” 등 예상치 못한 늦겨울 한파로 하루 인사를 대신하고, 정리해 둔 두꺼운 겉옷을 꺼내 입을 수도 있다.


국내 달력 정보를 총괄하는 한국천문연구원도 봄의 시작을 정의하지 못했다. 다만 동아시아 권역의 나라들은 한해를 24절기로 나눠 해의 시작과 끝을 정하고 인간이 그 안에서 행하는 행위들에 안정감을 부여했다고 말한다.


끝도 없는 무한한 시간을 태양의 운행에 기초해 하루를 24시간, 한 해를 12달로 구분하고 태양이 움직이는 길 (황도)을 24등분해 태양의 위치에 따라 절기 이름을 붙였다. 이것이 고려시대 때 중국에서 유입된 태양력이다.


지난해 11월 30일 동아시아 지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쓰이는 이 태양력이 중국의 신청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태양의 주기 운동을 관찰해 연중 계절, 기후, 만물의 변화규칙을 파악해 만든 지식체계라는 것이 세계 인류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이유다.


태양력에 따르면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立春)을 시작으로 우수(雨水) 경칩(驚蟄) 춘분(春分) 청명(淸明) 곡우(穀雨) 입하(立夏) 소만(小滿) 망종(芒種) 하지(夏至) 소서(小暑) 대서(大暑) 입추(立秋) 처서(處暑) 백로(白露) 추분(秋分) 한로(寒露) 상강(霜降) 입동(立冬) 소설(小雪) 대설(大雪) 동지(冬至) 소한(小寒) 대한(大寒)으로 이어진다.


▲2월4일, 24절기의 첫 시작점인 입춘이 성큼 다가왔다.


올해 입춘시는 00시 34분이다.


한 해를 시작하는 출발선 앞에서 그 해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례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입춘첩에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ㆍ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다)’, ‘소지황금출 개문만복래(掃地黃金出 開門萬福來 ㆍ 땅을 쓰니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여니 만복이 들어온다)’ 등의 소망 문구를 적고 집 대문이나 기둥, 천장에 붙이는 행위는 지금도 보편적으로 행해지는 기원 행사다. 앞으로 있을 경사스러운 일들에 대한 설렘, 기대, 긍정적 자기 암시 효과를 함께 보장하니 ‘입춘첩을 붙이면 굿 한번 하는 것보다 낫다’ 는 말이 딱 들어 맞는다.


조상들은 입춘 날 보리뿌리를 캐서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도 했다. 보리뿌리가 세 가닥 이상이면 풍년이고, 두 가닥이면 평년, 한 가닥이면 흉년이 든다고 했다.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과 아홉차리라는 풍습도 있다. 적선공덕행은 입춘 전날 밤에 타인에게 도움 되는 일을 한 가지는 꼭 해야 했던 풍습인데, 예를 들어, 밤중에 몰래 냇가에 징검다리를 놓는다든지, 거지 움막 앞에 밥을 갖다놓는다든지 등의 선행을 실천하는 것이다.


아홉차리는 무엇이든 아홉 가지를 한다고 해 이름 붙여졌다.

 

▲ 24절기의 하나 입춘이 4일 시작된다. 사진은 지난 입춘굿 퍼레이드 모습.

나무꾼은 아홉 짐의 나무를 하고, 노인은 아홉 발의 새끼를 꼰다. 계집아이들은 나물 아홉 바구니를, 아낙들은 빨래 아홉 가지를, 실을 감더라도 아홉 꾸러미를 감는다. 우리 조상들이 ‘9’라는 숫자를 가장 좋은 양수(陽數)로 보았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는 입춘날 날씨가 맑고 바람이 없으면 그해 풍년이 들지만 눈 또는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흉년이 든다고 여겼다.


입춘은 봄의 시작을 알리는 만큼 농경사회에서의 의미는 이렇듯 특별했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지면서 절기의 기능을 대부분 잃어가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때 제주의 탐라국 입춘굿은 세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제주에서는 해마다 입춘을 맞이해 1만 8천신에게 그 해의 풍요와 풍어를 기원하는 굿판을 벌인다.


입춘의 기쁨을 만방에 알리는 제의적 축제는 전국에서도 제주의 탐라국 입춘굿이 유일하다.


일제강점기 시 무속신앙 금지로 자취를 감췄다 지난 1999년에 다시 복원되면서 지금도 축제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


입춘굿의 역사처럼 대대로 전승되던 절기 축제가 서구문화의 유입과 개발 사회를 거치면서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가 최근 들어 하나 둘 부활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제주의 향토성과 제의적 성격을 두루 갖춘 이런 놀이마당들이 입춘 절기의 본래 성격처럼 긴 잠에서 깨어나 활기차게 되살아나길 기대해 본다.


한편 2017 정유년 탐라국입춘굿이 지난달 25일 기원코사를 시작으로 오는 4일까지 제주목 관아를 비롯한 제주시 일원에서 ‘빛의 씨앗을 품다’를 주제로 개최되고 있다.


2월 3일에는 춘경문굿, 초감제·도액막이, 우리소리 공연, 낭쉐몰이 등의 행사가 진행되며, 4일 제주목 관아에서 입춘굿 본굿이 봉행된다.


정선애 기자 dodojsa@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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