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을 쌓는 사회와 길을 여는 사회
성을 쌓는 사회와 길을 여는 사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현정석 제주대 교수/경영정보학과/논설위원

지난 1월 23일 문화체육관광부는 공공지원에서 배제되는 예술인 명단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하여 국민 앞에 사과했다. 또한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예술의 표현이나 활동에 대한 부당한 차별이나 개입을 방지하겠다고 밝혔다.

화이트리스트와 블랙리스트로 나누어 관리하면 행정은 편리하지만 창의적 사회로 나아가지는 못한다. 비판과 반대가 없는 사회는 닫힌 사회이다. 창의성은 성을 쌓는 폐쇄성이 아니라 길을 여는 개방성에서 나온다.

몽골의 울란바토르에는 돌궐제국을 부흥시킨 명장 톤유쿠크의 비석이 있다. 그 비문에는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닫힌 사회는 망하고 열린사회는 영원하다는 뜻이다. 몽골인들의 개방성은 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를 만들었다. 개인용 컴퓨터가 처음 출시되었을 때 애플 컴퓨터는 기술우위를 앞세워 개방하지 않았다. 후발주자로 뛰어든 IBM은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 인력이 없었다. IBM은 부랴부랴 기술을 공개하고 소프트웨어 개발자들과 부품 공급자들을 자기편으로 모았다. 기술은 열세였지만 지원군이 많은 IBM이 기술표준을 잡으면서 애플을 따돌렸다. 그 당시 IBM을 위해 운영시스템을 개발했던 빌 게이츠는 지금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제주도 모슬포에는 하멜 기념비와 하멜 선박이 전시되어 있다. 1653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소속이었던 하멜은 일본으로 가던 중 모슬포에 표류하였다. 하멜이 조선에 표류한 13년간의 월급을 받기 위해 동인도 회사에 제출한 보고서가 하멜 표류기이다.

17세기에 네덜란드는 후추와 도자기를 거래하는 동남아 항로가 돈이 되는 것을 알아차렸다. 네덜란드 의회와 상인들은 대규모 무역선단을 꾸리려 했지만 자금이 모자랐다. 네덜란드 국민들에게 한푼 두푼 받아서 투자금액만큼 이익을 배당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국민들의 투자금액을 어디에 어떻게 표시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 네덜란드는 국민들의 투자금액에 대해 권리증서를 만드는 것으로 해결했다. 이로써 네덜란드가 세계 최초로 주식회사를 발명한 나라가 되었다. 귀족뿐만 아니라 하녀도 동인도 회사의 주식에 투자할 수 있었다. 국가의 부가 국민들에게 배분되는 개방적인 사회로 바뀌자마자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가 되었다.

추상화를 처음으로 그렸던 칸딘스키, 풍부한 색채를 그렸던 클레, 가로와 세로의 격자무늬에 빨강, 파랑, 노랑을 그려 넣었던 몬드리안은 모두 미술역사를 바꾼 대가들이다. 이들은 독일의 바우하우스 학교에서 함께 학생들을 가르쳤던 교수였다. 바우하우스는 1919~1933년까지 운영되었다. 현대의 산업디자인은 바우하우스에서 태어났다. 현대인들이 사용하는 식기, 전등, 빌딩, 의자, 가구 등에 바우하우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바우하우스가 끼친 막대한 영향에도 불구하고, 1933년 나치 정권은 바우하우스가 퇴폐예술이라면서 폐쇄시켜버렸다. 그 이유가 나치 정권은 국가 지상주의를 추구했지만 바우하우스는 민족과 국가를 초월한 예술사상을 강조한 데 있었다. 나치의 탄압을 받은 바우하우스는 문을 닫았고, 칸딘스키, 클레, 몬드리안 모두가 독일을 떠나 다른 나라로 갔다.

남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해 낼 때 창의적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의 생각이 모두 똑 같다면 상식적일뿐 그다지 창의적이지 않다.

문화예술의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편저편 가르는 이분법적 사고가 아니라 생각이 다른 상대방을 포용하는 개방성이 있어야 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