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화구 너머로 보이는 삿갓오름 정상.

“인간에겐 네 번의 생(生)이 있다. 씨 뿌리는 生, 뿌린 씨에 물을 주는 生, 물준 씨를 수확하는 生, 수확하는 것들을 쓰는 生”


윤회(輪回)의 개념이 최근 회자되고 있다. 숱한 화제를 불러 모았던 드라마 ‘도깨비-쓸쓸하고 찬란하神’ 때문이다. 드라마는 불멸의 삶을 살아 온 도깨비가 인간의 생에 관여하면서 엮인 인연에 대한 에피소드를 담았다.


드라마는 인간의 삶과 죽음을 극명하게 나누는 것이 아닌 네 번의 윤회가 한 인간이 갖게 되는 운명으로 이야기했다. 그래서 전생과 이승에서의 행동들 하나하나가 미래의 복(福)과 화(禍)로 이어진다고 전했다.


또 드라마는 인간의 죽음을 한번의 이별로 여겼다. 그 때문에 망자들의 안식처인 공동묘지 또한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만남’의 공간이 됐다. 드라마에선 도깨비의 무덤이 있는 공동묘지를 재회의 공간으로 사용했다. 더불어 뛰어난 풍광까지 전했다. 과거 음습하고, 어두운 공동묘지의 인식에서 벗어난 것이다. 시청자들은 오히려 드라마 속 공동묘지의 아름다운 경치에 매료됐다.


제주에서도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떠난 사람을 그리워한다. 바로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에 위치한 ‘삿갓오름’이다. 지방도 1132호선을 사이에 두고 김녕중학교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다. 오름의 모양이 삿갓을 뒤집어 놓은 것 같다 해서 이름 붙여졌다. 오름의 또 다른 이름은 입산봉이다. 한자로는 봉우리 봉(峰)을 사용해 笠山峰(입산봉)으로 표기하나 과거에는 봉수대 역할을 하면서 봉화 봉(烽)을 사용해 笠山烽(입산봉)으로 표기했다.

 

   
▲ 삿갓오름 분화구 모습으로 현재는 농장이 들어서 있다.

오름은 해발 84.5m의 비교적 낮은 오름이다. 하지만 오름 시작부터 김녕포구와 마을이 한눈에 펼쳐진다. 산상의 굼부리를 제외하고는 오름의 전사면을 빙 둘러 가며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묘가 빼곡하다. 오름에 안장된 묘들은 마을과 마주하고 있다. 산 사람은 망자를, 망자는 산 사람을 보며 지척에서 서로를 보듬어 준다. 이런 묘들은 마을 풍경과 함께 어우러져 이색적이다. 섬뜩한 공동묘지의 느낌은 온데간데없고 마주보는 오름과 마을은 애틋하기만 하다.


삿갓오름은 제주섬이 지닌 24개의 수성화산 중 하나다. 산 높이에 비해 매우 큰 원형분화구를 품고 있는데 주민들은 이 굼부리에서 솟아나는 물을 길수(吉水)로 여겼다. 그래서 분화구 안에 용출하는 물은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금훼수(禁毁水)라고 부르며 보호하도록 했다.


풍수로 이야기 하면 오름은 물의 기운이다. 풍수지리에서 수(水)에 해당하는 산은 재물을 뜻한다. 산세가 좋은 곳에는 귀한 인물이 많이 나오고 큰 강이나 바다를 끼고 있는 곳은 재물이 드나들어 공ㆍ상업이 발달되는 것으로 풀이한다. 오름은 물의 기질과 더불어 바다까지 함께하니 지역은 인재를 많이 배출하고 재물 또한 넘치는 곳이다.

 

   
▲ 삿갓오름은 굼부리를 제외하고는 오름 전사면이 묘들로 빼곡하다. 사진은 오름 정상에서 바라본 김녕포구와 마을 모습.

제주인들은 예로부터 망자들의 영혼관을 중요시 여겼다. 풍수가 좋은 산과 밭에 집처럼 담을 쌓아 올려 조상의 묫자리에 공을 들였다. 또 산 사람에게 대접하듯 하루 세끼의 식사를 올려 조상에 대한 예의를 갖췄다. 그것이 앞으로 나에게 복을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기에 제주인들은 풍수가 뛰어난 오름에 산담을 쌓는다. 그 중에서도 삿갓오름은 길(吉)한 자리다. 그래서 많은 주민들은 삿갓오름에 정성을 다해 조상의 묘를 쓰는 것일 게다.


좋은 풍수를 벗 삼아 이승과 전생의 기로에 있는 삿갓오름의 망자들. 그들은 오늘도 지성이 지극한 후손 덕택에 안식을 취한다.

 

임주원기자 koboki@je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