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업 논설위원
‘나이 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중략) /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 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 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 세상 떠 넣어 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 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황지우 시인의 지은 ‘거룩한 식사’라는 시의 구절이다. 시인은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이웃을 돌아보며 새삼 혼자 밥 먹는 것에 대해 눈물겨워 한다. 밥상을 함께 하는 사람의 부재와 그렇게 만든 외로운 도시생활의 쓸쓸함을 그려내고 있다. 나이가 들어 하나 둘 떠나가고 홀로 남은 이들의 혼밥은 ‘찬 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다.
▲혼밥은 ‘혼자 밥 먹기’ 혹은 ‘혼자 먹는 밥’의 준말이다. 신조어로 우리 사회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젠 사회ㆍ경제를 관통하는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그런 만큼 혼자 밥 먹는 장면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식당에 혼자 들어가 밥을 먹어도 더는 민망하지도 부끄럽지도 않다는 얘기다. 바야흐로 혼밥의 시대다.
바쁜 시간에 쫓겨 불가피하게 혼밥을 하는 경우가 적잖다. 하지만 혼자 살다보니 어쩔 수 없이 혼자 밥을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대부분이다. 물론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즐기거나 혼자 먹는 게 편해 혼밥족을 자처하는 이들도 많다. 실업과 어려운 경제 사정 때문에 의도적으로 사람을 피하고자 할 때도 유용하다.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나홀로 가구가 급증하고 있다.
도내 1인 가구는 2015년 기준으로 5만8400가구에 이른다. 전체 가구의 26%를 차지한다. 4가구 중 1가구가 혼자 사는 1인 가구인 셈이다. 1985년(1만5000가구)에 비해 4배 가까이 늘었다. 5년 전인 2010년(4만5000가구)보다는 무려 1만3400가구 폭증했다.
그 요인은 여러 가지다. 저출산ㆍ고령화 심화와 만혼 탓이 크다. 이혼율이 올라간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취업난, 집값 등의 압박으로 연애, 결혼, 출산 세 가지를 포기하는 이른바 ‘삼포세대’가 나타난 것도 이유다.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 배우자 사별, 경기 침체, 비정규직 증가 등도 무시 못한다.
▲혼밥엔 ‘고독’이란 단어가 배어 있다. 그러니 혼밥족이 증가하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밥상이 둥근 건 여럿이 둘러앉아 함께 먹기 위해서다. 거기엔 소통이 있다. 밥상은 음식을 먹고 대화를 나누며 정을 싹 틔울 수 있는 작은 공간이다.
비록 죽을 먹더라도 함께 먹는 함밥이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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