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위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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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중 논설위원
어릴 적 가장 많이 읽은 책은 아마도 위인전일 게다. 훌륭한 어른이 되라는 뜻으로 학교에서도 권장했다. 웬만큼 사는 집엔 거의 위인전집이 꽂혀 있었다.

위인들의 이야기는 소설 못지않게 흥미진진했다. 탄생부터 예사롭지 않은 게 공통의 줄거리다. 특별한 태몽과 함께 태어나고 어릴 적부터 비범하다. 또래 애들이 놀기 좋아할 때 아이는 먼 산을 바라보며 나라의 미래를 걱정한다.

외국의 위인전도 꾸며내는 건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어릴 적 얘기도 유명하다. 도끼를 갖고 놀다 아버지가 아끼는 벚꽃나무를 베었다. 누가 그랬느냐는 호통에 어린 워싱턴은 자기가 그랬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정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이지만 실은 전기 작가 파슨 윔스가 지어낸 얘기다.

▲1982년 초중학생 대상 설문조사에서 가장 많이 읽은 위인전 1∼5위는 이순신, 세종대왕, 에디슨, 퀴리 부인, 신사임당 순이었다. 2016년 교보문고의 아동위인전 판매 순위는 1위 유재석, 3위 리오넬 메시, 4위 김연아, 6위 박지성, 7위 우사인 볼트가 차지했다. 이순신 장군(8위)과 세종대왕(11위)이 연예·스포츠스타에게 밀린 셈이다.

대한민국이 먹고살 만해지면서 위인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진 듯싶다. 과거 세대들이 위인하면 흔히 떠올렸던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난 것이다. 분야가 다양해지고 폭이 넓어졌다.

역사 속의 ‘큰 인물’ 대신 동시대의 ‘스타’에 대한 흠모가 두드러진다. 대개 미디어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인물의 성공스토리로 채워지고 있다. 반복적으로 접하다 보니 자연스레 더 관심을 갖게 된다는 거다.

▲요즘 인기 있는 위인전은 올바른 인격 함양보다는 진로 탐색 용도로 활용되는 것 같다. 어느 정도 과장과 미화를 필요로 한단다. 그래선가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높지만 너무 상업적 냄새가 난다. 선정적인 대중문화 속에서 인류와 역사에 대한 성찰이 사라진다는 개탄의 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한 시대의 위인상엔 사회 전체가 갈구하는 공통분모가 분명히 있다고 한다.

알다시피 누구나 가슴 두근거리는 삶을 꿈꾸지만 아무나 그곳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치열한 삶을 실천하기 위해선 역사 속에서 명멸했던 인물을 탐구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거다. 위인전을 탐독하는 건 과거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같다고 했다.

오늘날 무능한 리더십이 판치는 어지러운 세태에 정말 와 닿는 금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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