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홉 번째 바람난장이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에 위치한 머체골에서 진행됐다. 사진은 머체골에서 가야금 선율에 맞춰 위로의 춤을 선보인 박연술 무용가.

한라산에 머체골 있었다-오승철

 

의귀초등학교

2학년 1반

문태수

집에서 뜀박질로 두어 시간 등굣길

오뉴월 댕댕이나무 학교 종을 퍼 올린다

 

4·3에 숨은 고향 팔순에 찾아들면

올레에도 돗통에도 장기판 같은 집터에도

대숲만 먼저 돌아와 식솔인 양 두런댄다

 

아랫마을 위미리

내 아버진 그의 친구

이승과 저승 사이 잔술을 건네는 점방

그때 그 닭서리하듯 별도 훔친 밤이다

 

색깔로 표현되는 풍경들이 있다면 머체왓은 초록 아니면 검은빛의 양면성을 뚜렷이 갖고 있다.

 

양지쪽 이거나 음지쪽 이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양면성이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감싸 안는 그게 머체왓이 가진 매력 중에 하나다.

 

가령 한라산이 배경인 별똥별 매단 오승철시인의 시비(詩碑)를 시작으로 소롱콧길, 편백림길, 목장길, 전망대와 삼림욕 숲길 등 눈에 걸리는 것 하나 없는 시원스런 풍경과 한가로이 풀을 뜯으며 어슬렁대는 말들이 초록이라면 검음은 ‘터무니 있다’는 시비에 적힌 내용을 시작으로 4·3 발생 후 산속으로 피신하였다가 민간인이면 살려 주겠다는 말을 믿고 하늘에서 뿌려지던 삐라를 안고 자수를 하였는데 남자들은 죽임을 당하고 여자와 어린아이들만 살아남았다는 당시 의귀초등학교 2학년이던 문태수님의 말을 듣고도 믿을 수 없는 역사적 상흔을 간직한 채 사라진 마을 ‘머체골’이 또 다른 머체왓의 검은 색깔이다.

 

머체는 ‘돌’을 뜻하고 왓은 ‘밭’을 뜻하는 사투리라고 해설을 달지 않아도 여기저기 쌓인 돌무더기는 이곳이 사람이 살기에 얼마나 척박한 곳이었는지를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2012년 행정안전부 주관 친환경 생활공간 조성 사업인 ‘우리 마을 녹색길’로 선정되면서 우리 곁에 다가온 머체왓은 자신의 몸을 온전히 내어 주면서 이정표 없는 우리들에게 이제 어디로 가려 하는가? 스스로 길을 묻게 한다.

 

   
▲ 김해곤 作 터+무늬.

초록에서 검음으로 바람난장 팀들이 걸어 들어 왔다.

 

60년생부터 200~300년생까지 우거진 삼나무숲길을 걷다 머체골 입구 가까이 들어서니 야트막하지만 산담이 잘 쌓여진 무덤 한 장 “사람은 떠났어도 무덤은 남아 있네” 일행 중 누군가 중얼거린다.

 

바쁜 와중에도 진자리, 마른자리 가리지 않고 달려 와 주신 나무꽃 멤버들이 가신 분들의 넋을 달래는 위령제를 준비하는 동안 고철희 머체왓 숲길 영농조합 법인 대표님의 안내로 슬몃슬몃 마을 자리를 살핀다.

 

다섯 가구 중 김씨 집안이 큰 집이었다는 집터 주변으로 올레길, 구들, 화덕자리, 안거리, 밖거리, 굴묵, 돗통시, 물팡자리까지 보고 있으니 집 울타리를 에둘러 심어졌던 대나무와 양하가 스산한 바람에 버석거린다.

 

이 작은 집터에 다섯가구가 살았다니… 집과 집 사이 경계가 돌담 한 줄로 나뉜다.

 

바람난장의 시작은 고철희님이 오승철 시인의 “한라산에 머체골 있었다”와 “터무늬 있다” 낭송을 시작으로 은숙님이 치는 맑은 정주 소리가 맑은 울림을 내며 동심원의 파문을 일으킨다. 가신 분들의 넋을 달래는 위령제가 시작됐다.

 

   
▲ 고철희 머체왓숲길 영농조합 법인대표의 시 낭송.

마냥 슬퍼하기보다는 희망과 아름다움을 안고 살자는 의미의 위령제가 박연술 님의 손끝에서 훨훨 날았다. 검은 나비 한 마리이듯 검은새 한 마리이듯 검은 바람 한 줄기이듯 우리들 가슴 속으로 쏟아져 들어 왔다.

 

슬쩍 감아올린 치맛말기 사이로 보이는 검은 버선코가 이집 저집 올레 사이를 맨발로 뛰어다니던 아이들 발바닥같이 오종종하다.

 

다른 차원의 세계로 떠나가는 소지 한 장. 연기이듯, 연기이듯 펄럭이며 춤사위가 아픈 영혼을 쓸어 만진다.

 

   
▲ 가야금 가락을 선보인 은숙 소리꾼.

가다가 지쳤는가? 물팡자리 위에 저기 슬쩍 휘어진 돌각담 위에 삼나무 가지 위에 잠시 쉬다가 비로소 자유롭게 날아가는 날개, 날개들. 나무꽃 멤버들은 3.1절 날 조천만세동산에서 위안부 공연을 1시부터 한다고 한다.

 

조천 체육관에 모인 사람들 숙연해지겠다. 은숙님의 가야금 소리가 잦아들면서 공연은 끝이 났다. 지나던 관광객 서너 팀이 조용히 자리를 뜬다

 

삼나무 가지 사이로 오후의 햇살 따뜻하게 들이친다.

 

글=강영란       

시낭송=고철희 머체왓숲길 영농조합 법인대표

가야금=은숙       

춤=박연술       

사진=허영숙      

그림=김해곤      

음악·공연감독=이상철

※다음 바람난장은 중앙로 뮤직카페에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