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돈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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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호. 전북대 초빙교수
제주에서는 만나는 사람마다 ‘삼촌’이다. 삼촌 문화다. 왜 그럴까. 조금만 안면이 있어도 “사돈에 팔촌으로 걸린 괸당”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이는 굳이 친척 관계가 되는지 따져서 확인해 보지 않아도, 고향 마을을 밝히고 계보를 따지다 보면 하다못해 사돈의 팔촌이라도 된다는 이야기이다.

촌락내혼(村落內婚) 중심의 통혼권은 같은 마을이나 이웃 마을에 혈족과 인척의 중첩을 가져오는데, 괸당은 지연과 혈연에 중복이 생기면서 모두가 친척이라는 의미로서 사용되는 용어다. 괸당은 ‘성펜괸당[父系親]’, ‘외펜괸당[外戚]’, ‘처괸당[妻族]’, ‘시괸당[媤家]’으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동네어른 모두를 ‘삼촌(Uncle)’으로 부르는 관행이 정착했을 정도로 괸당은 제주 지역만의 독특한 문화다.

이렇듯 촌락내혼 중심의 통혼권은 일상생활에서 같은 마을이나 이웃 마을에 부계친, 외척, 처족, 시가친이 함께 생활하는 문화로 나타났다.

괸당의 탄생배경은 제주의 척박한 환경과 국가 사회적 현상 때문이다. 제주는 삼재도(三災島)로 수재(水災), 풍재(風災), 한재(旱災)로 흉년이 지속됐다.

특히 조선 영조(1739년)과 정조 때 심했다. 김만덕은 굶어 죽는 백성을 위해 구휼을 했다. 흉년을 이기지 못해 뭍으로 나가는 사람이 많았는데, 제주도민의 출국 금지령리 200년간(1629-1823) 내려졌고, 몽고 원나라 제주지배 100년(1273-1373)과 1948년 4?3 사건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따라서, 의지하고 돕는 괸당문화 탄생 배경이 된 것이다. 제주에 연결망은 괸당 Networks이다.

과연, ‘괸당’의 어원은 무엇인가.

제주는 돌이 문화 발생지다. 1234년 김구 판관(25살 약관의 나이로 제주 판관부임)이 ‘돌담’을 밭 경계에 쌓도록 한 동기(motivation)는 중국 진시황제의 만리장성이나 제주 사람들의 ‘수눌음’ 또는 육지부에서 집 주위에 탱자나무와 대나무를 심는 담장(墻)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은 아닐까.

담(墻)을 쌓는 까닭은 밖으로부터 안을 보호하고 침입을 막기 위해,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공간을 서로 다른 성격으로 나누기 위해서이다.

조선 시대의 주택에서 사당(祠堂)을 건축하고 주위에 담을 쌓는 것은 담 안의 공간을 신성화하여 제사공간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또, 행랑 마당이나 사랑 마당 등에 쌓은 담은 이들 두 공간 사이에 위계질서를 주기 위한 것이다. 제주에서는 올레가 안거리와 밖거리를 공간구분 하고 있다.

한편, ‘괸돌’은 ‘고인’돌에서 비롯됐는데, 순우리말인 고인돌은 고대 부족 국가 지배계층의 무덤 또는 제단을 의미하며, 이 단어의 유래는 큰 돌을 받치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괸돌’ 또는 ‘고인’돌에서 비롯됐다.

‘괴다’는 기울어지거나 쓰러지지 않도록 아래를 받쳐 안정시켜 준다는 말도 있고, 서로 특별히 귀여워하고 사랑한다는 말도 있다. 돌을 쌓으면 ‘돌담’이 되고, 밑받침되는 돌은 ‘괸돌’이 된다. 그리고 그 위에 다음 돌을 다시 얹으면 ‘괸담’이 된다.

즉, 돌과 돌의 ‘수눌음’이다. ‘수눌음’은 ‘수눌다’의 명사형으로 ‘손(手)를 쌓다’로 협동(cooperation)을 의미한다. 여기서 ‘눌’은 ‘쌓다’는 뜻으로 그 예가 ‘촐눌’이다. 돌을 깨는 사람은 돌챙이다.

‘괸담(墻)’이 관습상 발음(口語?)의 변화로 괸당이 되는데, ‘괸당’은 제주 돌담문화에서 꽃핀 제주 특유의 ‘수눌음’ 文化이다.

“딸 있으면 사돈 괸당 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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