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아픔 없는 결실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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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희. 제주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추위에 움츠리며 생활하다 만난 이탈리아 시인 자코모 레오파르디의 시는 반복되는 일상에 익숙해지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너는 아직 지겹지도 않은가./너의 영원한 길들을 한결같이 가는 것이./너는 아직 권태롭지 않게 꿈꿀 수 있는가.’ (‘아시아에서 떠도는 양치기 야상곡’ 중)

어느 날 학교 근처를 지나는데 꽃다발을 파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아! 맞다 졸업과 입학 시즌이구나’ 하며, 옛날의 졸업식 풍경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졸업식을 마치고 캠퍼스에서 학사모를 부모님께 씌어드리며 즐겁게 사진을 찍는 사람들, 친구들과 연인들이 서로의 졸업을 축하해 주는 모습, 사회 초년생으로 첫발을 내딛는 기대감과 설렘으로 서로가 격려하고 응원해주는 모습이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최근 졸업식에는 졸업생의 참여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졸업의 즐거움과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소속된 곳에서 벗어났다는 것에 더 불안해진다고 한다. 그러한 불안과 청년 취업난은 대학 졸업식 풍경을 바꾸고 있다. 졸업식에 가지 않겠다고 하는 학생들은 취업을 못 한 상태에서 졸업식에 참여하는 것이 부담되고, 취업 준비 때문에 졸업식 참여를 기피하고 있는 것이다. 직장에 소속됨이 없는 졸업생들은 인생의 계획을 세우는 자체가 힘든 상황이다. 그들 개인의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 문제로 인해 계획 세움을 박탈당하고 있는 것 같은 현실이 안타깝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접어두고 당장 넘어야 할 취업이라는 시험 준비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현재 상황에서 계획은 필요하다. 사회로 나가는 길은 다양하다. 다양한 만큼 그 길들은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이 여러 갈래의 길을 한꺼번에 선택할 수는 없다.

길에는 내가 선택하는 길이 있고, 사회적 관계에 의해서 만들어진 길이 있다. 하고자 하는 길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지만, 타인이 선택해주는 길을 가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인생을 적극적으로 살고 개척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인생을 수동적으로 사는 사람도 있다. 인간의 길에는 현재 살아가는 길이 있고, 아쉽지만 선택하지 못한 저편에는 미련이 남는 길이 있다. 가보지 못한 길이 항상 마음에 남는 법인데 우리는 이를 ‘가지 않는 길’이라고 말한다.

길에는 언제나 시작과 끝이 있다. 하나의 역할도 다른 역할에서는 하나의 끝이고, 다른 역할을 만나면 새로운 시작이 된다. 어쩌면 인생은 무수한 역할들에 의해 시작과 끝을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시작이든 끝이든 정체되거나 퇴행하는 것이 인생은 아닐 것이다. 인간은 날마다 새로운 기대를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다. 자신의 다양한 역할이 새로운 나를 만듦으로써 세상은 살아봄직한 아름다운 나의 세계가 된다.

이제 우리에게는 절망보다는 희망을 꿈꿀 때이다. 우리의 아름다운 세계를 유지하려면 그것을 지탱할 수 있는 냉철한 이성과 깊은 사색(思索)의 시간이 필요하다. 겨울이 오면 봄은 머지않으리라는 기다림이 있지만 그 새봄이 오기까지 겨울은 우리에게 매우 혹독했다.

오늘도 우리는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러나 그 새로움의 발걸음과 함께 진한 아픔도 있기 마련이다. 아픔 없는 결실은 없다. 인생의 아픔도 하나의 수련이기 때문에 그것을 감내할 줄 알아야 한다. 길은 언제나 우리에게 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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