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성호 作 인생은 아름다워.

한잔의 커피

                                 --용혜원

하루에

한 잔의 커피처럼

허락되는 삶을

 

향내를 음미하며 살고픈데

지나고나면

어느새 마셔 버린 쓸쓸함이 있다.

 

어느날인가?

빈 잔으로 준비될

떠남의 시간이 오겠지만

목마름에

늘 갈증이 남는다.

 

인생에 있어

하루하루가

터져오르는 꽃망울처럼

얼마나 고귀한 시간들인가?

 

오늘도 김 오르는 한 잔의 커피로

우리들의 이야기를

뜨겁게 마시며 살고 싶다

 

 

성안에 위치한 ‘까사돌’이란 카페에 간다 한다.

 

옛 제주대학 병원 조금 지나 중앙성당에서 이백걸음 정도 떨어진 곳이라 한다.

 

동문로터리 지나 모든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였던 중앙로 현대약국 앞. 길 건너편 조금 더 걸어 들어가 중앙성당.

 

어느새 잊고 지냈던 그 거리와 그 소리와 그 냄새들이 한꺼번에 밀어닥친다.

 

기독교 재단이 운영하던 여학교를 다니던 시절 토요일이면 가끔 학생들 전체가 중앙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곤 했었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여서 성당 안의 정숙하고 순결한 느낌과 바로 내 앞에서 기도하는 수녀님의 꼬옥 감은 속눈썹을 죄짓듯 슬몃 훔쳐보는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5월 성모성월마다 들고 가던 백합 냄새가 났다.

 

성호를 긋고 긴 줄 뒤에서 한 사람씩 받아먹는 밀떡이 내 차례가 되었을 때의 그 이유 없는 두려움과 설렘의 가슴 쿵쾅거리던 기억이 고스란하다. 어디로 갔는가 그 많은 밀떡들은….

 

   
▲ 아홉 번째 바람난장이 중앙로에 위치한 까사돌 카페에서 진행됐다. 사진은 문순자 시인의 시 낭송 모습.

까사돌이 거기 있다. 좋은 음악 감상실이라 하니 다이아몬드 트위스트가 유행하던 시절의 뮤직박스나 시화전, 조금 더 수준 높았던 클래식을 감상할 수 있었던 소라 다방 같은 곳에서 뒷주머니에 도끼빗 꼽은 장발 머리 오빠가 오늘의 손님으로 우리를 소개해 줄지도 몰라 흥분되는 가슴을 억누르며 카페 문을 연 순간 밖에서 들리지 않던 웅장한 오페라 선율에 압도되고 말았다.

 

170여 년이 지났지만 19세기 유럽의 사회사를 대변해 준다고 평해지면서 유럽의 정신으로 높이 추앙받는 빅토르 위고의 작품답게 빈틈없고 완벽한 한 편의 이야기가 애절한 사랑의 절규를 토해내고 있었다. 지금 막 꼽추 콰지모도가 얼룩진 사랑의 욕정으로 일그러진 신부에게서 에스메랄다를 구해내고 있는 중이었다.

 

한 번 들으면 머릿속에 각인되는 아름답고 강렬한 노래, 현실과 몽환을 넘나드는 독특한 색채, 단 한마디의 대사도 없이 섬세하고 힘 있는 54곡의 아리아로 작품 전체를 이끌어 장엄함이 화면가득 녹아 있는 〈노트르담 드 파리 〉가 DVD로 상영되고 있었다.

 

30여 분이 지나 상영이 끝나니 카페 사장님이신 이용희 님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오래전부터 하나씩, 둘씩 모으던 클래식 영상 음반들이 벽면가득한데 다 영상으로 만날 수 있는 오페라 앨범들이다. 매일 오후 7시 이후에 영상으로 만나는 음악 감상회가 열리니 눈과 귀가 온통 황홀하겠다. 카페라 하면 분위기가 있거나 커피콩 볶는 냄새가 나기 마련이지만 까사돌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오페라, 음악강의 영상 자료를 좋아해서 일주일에 한번씩 음악설명도 해준다는 이용희님은 도립병원장을 거쳐 공직 퇴임 후 음악 영화를 보는 게 좋아서 까페를 열었단다. 까사돌 역시 예전 제일산부인과였던 자리로 그 시절 본인이 손으로 받은 아이만도 사천명이 넘는다 하니 그동안의 노고가 참 크셨겠다,

 

   
▲ 까사돌 카페 사장 이용희씨의 모습.

카페를 열고도 돈 버는 데는 별 관심이 없어서 커피 한잔에 3000원. 그것도 손님이 통에 직접 돈을 넣어 셀프로 가져다 마셔야 한다.

 

음악은 가장 중독이 심해서 자꾸 들어도 더 좋아진다고 하니 이쯤이면 삶이 음악이지 않을까 싶다. 아끼는 것을 잃었을 때의 그 소중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어 날이 좋으면 꽃 가꾸기도 즐긴다는 은발의 노신사는 감상회 실에 찾아오는 분들과 매일을 오페라 이야기로 하루가 아름답다.

 

얘기가 끝나니 기다렸다는 듯 오페라를 감상하시던 분이 “사장님! 얘기 끝났나요? 커피가 떨어졌어요” 한다.

 

와락 쏟아지는 웃음 뒤로 마지막으로 이 음악 듣고 가라며 DVD를 재생시킨다.

 

푸치니의 〈토스카〉 중 ‘별은 빛나고’가 흘러나온다.

 

“별은 빛나고 대지는 향기로 가득 차 있었다. 채소밭의 문이 삐걱거리며 모래에 스치는 발자국 소리.”

 

아! 아! 어쩌랴. 노래가 흘러나오는 동안 우린 이미 오페라 선율에 중독이 되어가고 있었으니…. 그 울림들이 가슴 안에 퐁퐁 들어오고 있었으니.

 

   
▲ 이용희 사장이 바람난장 식구들에게 카페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글=강영란

그림=임성호

시 낭송=문순자

사진=허영숙

음악 설명=이상철

 

※다음 바람난장은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에 위치한 장한철 산책로에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