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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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수 시인/수필가/아동문학가

생명이 움트는 소리.

 

봄이 오면 농부들이 할 일이 많아진다. 감귤 농사를 하는 사람들은 일찍부터 봄을 준비하는데, 그 일 가운데 하나가 가지치기 전정剪定이다.

 

알맞은 시기가 요즘이다. 일손이 바빠지고 있다. 가지치기는 아무 가지나 잘라내는 것이 아니다. 잘라내야 할 가지와 남겨둬야 할 가지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시각이 필요하다. 잘못 자르면, 수확량에 많은 차질을 빚는다. 가지는 버리는 것 같지만, 남기는 것이다. 전정이란 한자를 보면, 잘라낸다는 ‘剪 ’과 정한다는 ‘定’이 합쳐진 글자다. 말 그대로 잘라낼 것을 정한다는 개념으로, 최상의 열매를 얻기 위해 선택한 가지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시키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머지 것들을 잘라내는 ‘선택’과 ‘집중’이 필수적이다. 마음 밭은 어떤 가지를 남기느냐가 결실을 좌우하게 된다.

 

얼마 전 모 방송국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한 화면의 주인공은 음식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성악가였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지. 꽤나 시간이 지났다고 한다. 음악이 좋아 성악을 택했고, 선택한 성악을 위해 요리를 하거나 음식을 만들어내면서도 짬만 나면, 목소리를 관리하는 데, 소홀함이 없었다. 맑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성악가들, 그들의 목소리가 갖는 가치는 어떠한 보물보다도 소중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어디 성악가들뿐이겠는가? 가수들의 훌륭한 목소리도 그렇다. 타고난 재능은 물론 그 누구보다도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을 통해 다이아몬드와 같은 결정체를 얻어낸 것이 아닐까?

 

그들은 성악을 좋아하고, 대중가요를 좋아하기에 음악을 통해. 죽어서라도 남기고 싶은 것은 자신의 육성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글자를 하얀 백지에 올려 태우는 문학인들은 어떨까?

 

사물을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것을 글로 정확히 전달해야 원활한 소통이 가능해진다. 보기 좋은 떡이 맛있듯, 난해하고 어려운 글보다 간결하고 매혹적인 글에 보통 사람들은 관심이 많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복잡하고 바쁜 시간에 쫓기는 생활에서 오는 현상의 하나일 테다.

 

대작이나 역작, 명작은 결코 쉽게 나올 수 없다. 단, 한순간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작가들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글쓰기에 숱한 시간을 투자한다. 초보 때는 생각한 것을 백지에 써내려가는 데, 문장이 제대로 되지 않아, 쓴 것을 몇 번이고 지워 버린다. 그게 당연한 일이다. 문장의 호흡이 길어지면, 짧게 줄여서 호흡을 적절히 조절해 나가기도 한다. 틀린 곳이 있으면, 바르게 고치고, 문맥이 통하지 않을 경우에는 앞뒤를 바꾸는 작업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이처럼 습작의 습작을 거듭하면서, 글을 쓰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의도한 대로 작품이 완성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아동문학가 강소천은 ‘우리나라 말을 후세에 이어 가게 하려면, 좋은 아동문학작품을 남기는 것’라고 했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내 주변에는 정년퇴임을 하고나서 생활문학에 전념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좋은 현상이다. 대파뿌리처럼 길어진 머리카락이 한 해 한 해 그 수가 줄어드는 데도 열정은 젊음이다. 기록으로 작품을 남기는 아마추어의 작가이든, 프로 작가이든 좋은 글을 남기는 일은 소중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제주해녀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함으로써 후세에 남기듯, 농부는 좋은 씨앗을, 음악을 하는 성악가나 가수들은 좋은 목소리를, 글을 쓰는 사람은 좋은 글을 남기는 일은 삶의 소중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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