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정치화와 시민의 제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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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 서울과학종합대 초빙교수/논설위원

도시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도시(都市)’라는 글자가 의미하는 바대로 정치와 경제로 규정된다. 도(都)는 정치적 중심지를 뜻하고, 시(市)는 경제적 중심지를 말하지 않는가? 요컨대 도시는 정치와 경제가 만나서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메커니즘으로 사람들을 움직이는 조직이다.

여기에서 조직은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체계적으로 활동하는 두 사람 이상의 경영체를 뜻한다. 그러므로 도시에서는 ‘보다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목적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필요한 제도를 만들고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때 그 목적을 성취할 수 있다.

서귀포 도심에 10층 이상의 고층건물들이 들어서면서 조망권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서귀포가 형성될 때부터 삶의 터전을 일구며 살아온 토박이 주민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무리 삶이 고단하고 힘들어도 한라산만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더 바랄 게 없었어. 그런데 갑자기 높은 집들이 생겨나면서 한라산을 볼 수가 없게 됐어. 한라산은 명산이라서 그 정기를 받아야 가슴이 후련한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이야.”

그래서 생겨난 게 ‘서귀포의 미래를 생각하는 시민모임’이다. 서귀포의 구도심이 제주시의 원도심처럼 공동화와 불균형의 딜레마에 빠지지 않도록 시민들이 머리를 모아서 문제를 파악하고 서귀포다운 대안을 제시해 보자는 취지다.

그런데 최근 이 모임에 이의를 제기하는 주장이 생겨났다. 도시가 발전하려면 지금보다 더 높은 건물을 지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게 해야 경제가 잘 돌아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도심 내에 자리한 고층 건물들을 관찰해보자. 단적인 예로, ‘호텔’이라 이름붙인 높은 집들은 대부분 버스로 들어오는 단체 고객을 받아서 이튿날 내보내는 식의 영업을 한다. 이들이 얼마나 서귀포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지는 명확치 않지만, 뒷집 마당에 스며들던 햇볕을 가려서 꽃을 시들게 하고, 할머니의 얼굴에 그늘을 드리워서 한숨짓게 하는 건 분명하다. 더욱이 이웃들에게 교통 혼잡과 주차 방해를 유발하면서도 저 혼자 편안한 무뢰한 같다. 얼마 없으면 시장 입구에 이 같은 건물이 등장해서 시장으로 들어가는 고객들을 마음대로 빨아들이는 공룡백화점이 될 거란 소문이다. 소문대로라면 서귀포매일올레시장 일대의 교통 혼잡과 주차 전쟁이 평화로운 시장 경제를 속절없이 무너뜨릴 판이다.

도시는 생태계와 같아서 다양한 이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지속가능성이 보장된다. ‘리비히의 법칙’에 따르면 식물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영양소 가운데 성장을 좌우하는 것은 가장 부족한 요소다. 식물이 잘 자라려면 질소·인산·칼륨·석회 등이 필요한데 이중에 어느 하나라도 모자라면 다른 것들은 아무리 풍부해도 무용지물이다. 요컨대 도시가 지속가능하게 안정적으로 성장하려면 도시 생태계의 저변을 지탱하는 시민 대다수의 삶이 안정되고 행복해야 한다.

이 점에서 볼 때, 최근 들어 서귀포건축포럼이 주최한 ‘시민이 도시를 바꾼다’는 주제의 강좌는 시민들이 도시의 주인 역할을 찾는 데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세계 여러 도시들의 혁신사례를 통해 서귀포다움을 재발견케 해 준 정석 교수의 특강도 일품이었지만, 그 강의를 경청하는 이중환 시장의 뒷모습은 더더욱 인상적이었다. 독특한 자연경관과 생활환경으로 주목받는 서귀포가 자연과 사람의 조화를 통해 ‘행복한 도시’로 나가려는 진지함이 뜨거운 공감을 낳았다.

공부하는 시장과 시민들이 가슴을 열어 소통하고 머리를 맞대 논의할 때 오만한 정치권력과 자본력이 도시를 농단하지 못할 것이다. 이는 도시가 결국 정치라면, 시민은 도시를 이끌어 가는 경영자이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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