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형, 그날이 기억납니다. 기쁨과 설레임으로 남제주군에 있는 무릉초등학교를 찾아 떠나던 기억 너머의 그날 말입니다. 첫 부임지는 마치 지구 끝에 있기나 한 것처럼 저를 태운 시외버스는 속절없이 달리기만 했었지요.

 

그곳에서 시작한 교직40년. 이후 순박하기만 한 농촌 아이들과 함께 하는 교육은 제 삶이었고 제 인생의 전부였습니다. 가난이라는 굴레를 뒤집어쓴 채 방황하던 나를 일으켜 세우며 환경이 네게 주는 것을 탓하지 말고 집념할 수 있어야 한다는 K형의 편지가 결국 저를 끝까지 교원의 길로 이끈 셈이지요. 이제야 정말 원숙한 교육을 시작해도 좋을 것 같은데 지난 2월 정년퇴임을 했습니다. 직원들이 마련한 퇴임식장에 들어서며 제일 먼저 K형을 떠올린 건 또 무슨 연유일까요?

 

교육이 뭐 별게 있느냐고 교육은 그저 아이들을 가슴으로 보듬고 사랑할 때 저절로 풀려나가는 실타래와 같다고 하신 말씀이 그 어느 교육학자의 심오한 교육이론보다 더 살갑게 다가왔기 때문은 아닐까요?

 

K형, 전 교육을 하는 내내 초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부끄럽지 않게 교육을 했습니다. 학교를 뒤로하고 들판을 쏘다니던 녀석, 졸업식 날 저녁 까만 비닐봉지에 조기 두 마리를 가져왔던 녀석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어엿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했으니 하는 말입니다. 학교를 그만둔다는 녀석을 잡아놓고 초등학교는 졸업해야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다고 다독였었지요. 녀석이 40여 년 지난 지금 중소기업 사장으로 제 앞에 나타났을 때 저는 알았습니다. 녀석의 닫힌 마음의 문을 연 비밀의 열쇠가 무엇이라는 것을요. 녀석은 요즘도 가끔 타향에서 외로울 땐 어눌한 어투로 제 전화기에 찾아오곤 합니다. 교원, 문인, 사업가 등 무수하게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건만 녀석은 유독 제 가슴에 못으로 박혀있는 제자이기도 하네요.

 

K형, 지금은 스마트기기를 장착한 무수한 교육매체와 자료들로 넘쳐나건만 차가운 밤거리를 헤매고 방황하는 아이들은 더 많아지고 있는 교육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겉으로는 교육과 사랑을 외치면서 자기가 만든 틀 속에 아이들을 가두어 놓고 매뉴얼대로 교육을 하려는 안타까운 교육학자들이 많은 까닭은 아닐까요? 제4차 산업혁명시대의 도래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감성과 사랑만이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지배할 수 있다는 걸 후학들이 알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정년퇴임을 하니 이제야 알겠습니다. 사랑이 배제된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훈련일 뿐이라는 당신의 말뜻을 말입니다. 40년간 교육을 하면서 심오한 교육이론을 적용해도 풀리지 않았던 문제를 이제야 풀었다고나 할까요? 그렇게 저와 초록동색인 녀석들이 어려운 환경에 굴하지 않고 일어선 게 그걸 증명하니까요.

 

K형, 제 집 뜨락에 매화가 벌써 지기 시작하는군요. 춘분을 앞둔 오늘 봄빛은 이렇게 찬란한데 그때도 이맘쯤이었을까요?‘난관이 생겼을 때는 언제든지 얘기해라’당신이 내게 한 얘기가 45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하네요. 이제 민간인으로 살아가는 첫 봄날에 곁에 없는 당신을 그려봅니다. K형,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