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건의 결착(結着)을 뜻하는 ‘일단락 짓는다.’는 말이 귀에 익다. 글을 쓸 때, 사고의 흐름을 일단 끝내고 다른 생각을 시작하는데, 이때 사고나 감정의 리듬이 반영된 현상이 ‘단락’이다.

한데 요즘 글에서 단락의 개념이 소멸하는 것을 보게 된다. 두어 줄 끌고 가다가 행을 바꾸는 게 일반적인 관행이 돼 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신문에서 시각적 편의를 위해 출발한 흐름이 보편화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파기돼야 할 경박하고 얄팍한 습관이다. 단락은 사고의 호흡과 리듬을 반영하면서 한편 그것을 분명하게 조성한다. 두어 줄마다 행을 바꾸는 문장은 지속적인 사고에 역행하는 것이다. 치밀하고 꾸준한 사고의 진행보다는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산만한 사고나 느낌을 반영하고 또 그것을 조장하게 되니 문제다.

글을 쓰며 불쾌한 경험으로 남아 있는 게 함부로 줄을 바꿔 단락이 파괴당했을 때의 곤혹스러움이다. 조그맣다면 조그만 일이지만 비위에 거슬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지면의 편의를 위해서 글쓴이의 의도 따위는 무시돼도 좋다는 지극히 비민주주의적인 발상이 밑에 깔려 있음을 생각하면,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자의적 권력 남용이고, 이런 조그마한 권력 남용의 축적은 한 사회를 경직되고 허투루 하는 세상으로 만든다.

단락은 글뿐 아니라 사회현상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이제까지 지속돼 온 일련의 사태에 ‘일단락 짓기’가 절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헌재의 판결에 의해 현직 대통령이 파면됐다. 우리 헌정사의 첫 사례로 세계가 놀랐다. 탄핵이 재판관 전원 일치로 인용되면서, 대한민국 최고 통치자인 대통령이 선고 순간, ‘전 대통령’이라는 한 자연인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피청구인인 대통령을 파면한다.” 헌재소장 대행의 목소리는 나라를 뒤흔들 만큼 냉엄했다. 무려 석 달 동안 주말마다 광장을 메워 온 촛불과 태극기 집회, 그 뜨겁게 달아오르던 현장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탄핵 찬반, 양쪽 모두에게 나름의 입장과 생각이 있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종국엔 대통령 파면이었다.

따지고 보면, 어느 한쪽이 이기고 다른 한쪽이 진 승부가 아니다. 헌재의 판결은 이념도 한 계층의 입장을 편든 것도 아닌, 모두를 초월한 헌법 수호 의지의 일단락 짓기였다. 촛불 민심의 승리라지만, 그렇게만 볼 것도 아니다. 헌재의 결정은 법치와 민주 가치를 확인한 것이다.

우리는 이번,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음을 직접 체험했다. 종당에 국민의 승리, 민주주의의 승리, 헌법의 승리 그리고 민주주의 이정표를 세운 시민혁명의 승리였다.

이제 눈앞에 중요한 일을 맞닥뜨렸다. 촛불도 태극기도 내려놓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일, 분노로 웅성거리고 들끓던 사태의 일단락 짓기. 우리 모두 대한민국, 우리 모두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어간 우리 사이를 떼어 놓던 반목과 갈등과 대립의 시대를 마감해야 한다. 일단락 짓기는 빠르고 분명할수록 좋다. 거대 집회 뒤 휴지 조각 하나까지 줍던, 뒤치다꺼리하는 손이 있었다. 세계인이 놀랐지 않은가.

시민들, 많이 고단하다. 거리에 나갈 일이 소멸했다. 헌재의 판결에 승복하는 시민의 성숙한 모습이 얼룩지면 안 된다. 새봄에 광장도 좀 쉬어야 한다.

급박하게도 눈앞에 대선이다. 섣불리 뽑아서 될 일인가. 누가 사람다우며, 누가 이 나라의 미래비전이며, 그는 우리 헌법을 잘 지킬 것인가. 이번에야말로 청산해야 할 패거리 정치 관행…. 근본을 살필 일이다.

또 한 번 일단락 짓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