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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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권일 수필가

3월의 제주는, 생동(生動)으로 아름답다.

 

잔설(殘雪) 이고 있는 한라산 자락마다, 봄기운이 안개처럼 자욱하다.

 

수선화·매화·동백꽃 차례로 진 자리에, 병아리털 같은 노란 유채꽃 낭자하고, 움트는 복숭아나무에, 초저녁 별 같은 핑크빛 꽃봉오리 돋아나고 있다.

 

추위와 삶의 무게로 움츠렸던 사람들도, 모처럼 차려입고 상춘(賞春) 나들이에 나선다.

 

가벼운 발걸음과 환한 얼굴들이, 여느 봄꽃들 못지 않게 곱고 화사하다.

 

아름답고 한가로운 이른 봄의 풍경. 그러나 감귤농사를 짓는 농부들에겐 하루해가 짧다.

 

온 동네가 ‘부엌의 부지깽이도 덤벙일 정도’로 바쁘다 보니, 일없이 동네를 어슬렁거리다가는 지청구를 듣기 십상인 농번기이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농사도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풍성한 결실을 담보할 수 있다.

 

전지(剪枝)와 전정(剪定)은, 봄 농사의 남상(濫觴)이다. 나무들 사정들을 꼼꼼히 살펴, 생장과 결실의 목적에 따라 손질을 해주어야 한다.

 

정지는 가지를 정리하는 일. 불필요한 가지나 썩은 가지들을 제거하여, 나무 곳곳에 햇빛이 골고루 들게 하는 비교적 단순작업이다.

 

그렇지만, 전정은 고도의 기술을 요한다.

 

열매가 달릴 결과모지(結果母枝)와 다음 해에 달릴 예비지를 선택하여, 각각의 생장환경에 맞게 보살펴야 한다. 전정을 잘못하면 과잉생산으로 소과의 양이 많아지거나, 다음 해 수확량이 격감하는 ‘해거리’ 현상을 자초한다.

 

이런 이유로, 농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전정 작업은 아무나 쉽게 할 수 없다.

 

그래서 전정 전문가들에게 맡기는데, 엇비슷한 시기에 일이 몰리다 보니, 구하기가 쉽지 않다.

 

일당 18만원에 담뱃값과 점심값, 간식비등을 더하면 20만원 정도가 든다.

 

전지와 전정으로 잘라낸 가지들은, 태워 버릴 수도 있지만 화재위험이 있어, 파쇄기를 이용하여 잘게 부숴, 거름으로 요긴하게 사용한다. 이맘 때 농촌 들녘에서 들리는 굉음은, 파쇄기의 작동음이 대부분이다.

 

파쇄작업 중에 조금만 방심하면, 큰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가지들에 뒤엉켜 손이나 팔이 파쇄기에 빨려 들어가 잘리기도 하고, 심지어는 목숨을 잃는 일이 적지 않아, 농부들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한다.

 

나무의 어머니인 토양 건강을 위해, 거름과 비료를 뿌려 주는 일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거름은 대부분 유기질 함량이 높은 것을 고르는데, 무게가 20㎏에서 30㎏으로 묵직하다.

 

하우스 감귤원인 경우, 작물에 따라 ㏊당 300에서 400포대를 뿌리는데, 무성한 나무들 틈새로 포대를 나르는 일이 만만치 않고, 구부려 앉은 자세로 나무주위를 따라 골고루 뿌리는 일도 진땀을 빼는 일이다. 토양 산성화를 막기 위해, 화학비료의 사용은 극히 제한적이다.

 

남들처럼 봄나들이 한 번 못 간 채 3월이 흐르고, 일출에서 일몰까지 이어지는 농사일이 고되지만, 농부들의 얼굴에는 평화가 가득하다.

 

사람 세상 안팎은 혼돈(混沌)으로 막막하고, 먹고사는 일 여의치 않지만, 더운 땀 식히고 바라보는 농장에, 아지랑이 같은 희망이 피어오른다. 감귤나무는 농부들의 벅찬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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