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수레가 요란하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안재철 제주대 교수 중어중문학과/논설위원

운동 삼아 마을길을 달리다 보면, 개가 짖는다. 한 마리가 짖으면, 여기저기에서 수많은 개들이 떼를 이루어 짖어댄다.

개는 작고 겁이 많은 놈이 먼저 짖는다. 맨 처음 짖는 놈은 분명히 나를 보고 짖은 것 같은데, 따라서 짖는 놈들은 왜 짖는지 누구에게 짖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따라서 짖는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허공에 대고 짖다가, 결국 저희들끼리 쳐다보고 짖는다. 이렇게 이놈 저놈이 짖어대면 주위가 온통 시끄럽지만, 시작은 단 한 마리의 겁 많은 개가 짖었을 뿐이다.

짖는 개는 겁이 많다. 그러나 정말 무섭고 덩치가 큰 놈은 짖지 않고 무심하다. 겁에 질린 놈이 그것을 감추려고 더욱 요란하게 짖어대는 것과 같이, 사람들도 없는 자가 유난히 요란하게 나서서 까불며, 영혼 없는 자들은 이유도 모르면서 따라서 까불어댄다.

젊어서는 꾸미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지금은 로션을 바르는 것은 기본이고, 간혹 거울 앞에 서서 쭈그러드는 피부와 빠져가는 머리카락을 보면서 번민한다. 쭈그러드는 피부는 조금이라도 더 팽팽하게 보였으면 좋겠고, 없어져 가는 머리카락은 많아 보였으면 좋겠다.

젊었을 때는, 있는 그대로 아름다웠지만, 지금은 볼품이 없어서 감추려고 치장한다. 그렇지만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오는 세월을 기를 쓰고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그래서 잠시 거울 앞에 서 있을 때는 울적하다가 거울을 벗어나면 잊어버리고 그저 하던 일 하며 산다.

얼마 전 우리는 머리에 헤어롤을 꽂고 출근하는 이정미 재판관의 아름다운 실수를 목도하였다. 그는 어린 생명들이 죽어가는 시간에도 얼굴에 미용시술을 하고 올림머리를 했다는 한 여인을 탄핵하였다.

올림머리를 하지 않으면 밖으로 나오지 않아, 스스로를 고립시켜 불통이 되고, 혼자 있는 시간에는 연속극을 보거나, 꼭 자기 같은 여인과 구중궁궐에 앉아 수다나 떨었다고 한다.

아는 것이라고는 연속극의 주인공이나 미용시술 외에는 없었으니, 외모라도 잘 꾸며 있어 보이고 싶었을까? 양심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냥 없는 대로 살지, 그랬으면 자기도 행복하고, 국민들도 행복했을 것을….

지금 생각해 보면 “대전은요?”는 의미심장한 말이 아니라, 말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무지한 자가 내뱉는 미성숙된 뇌까림이었을 뿐이다.

이런 자가 대통령을 했다니, 누구라고 무엇인들 못할까? 대통령이 이 정도라면, 장관, 국회의원, 총장 따위라고 별 것 있겠는가? 이런 자리들은 주군의 눈치를 잘 살피거나, 거짓으로 잘 꾸미면 얻을 수 있는 자리라고 치고, 혹 교수는 공부라도 잘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다. 그것도 최소한만 알고, 매번 같은 말만 해도, 배우는 학생은 해마다 바뀌므로 어려울 것도 없다. 논문조차도 못 써서 쩔쩔매는 자가 오히려 대학자라고 까불어대는 것이 현실이다.

정치하는 자라고 별 것 있겠는가? 아마도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자일수록, 말은 좋으나 진실한 말은 없을 것이다.

文質彬彬(문질빈빈)이라는 말이 있다. 文이란 본래 뜻이 무늬(紋)이므로 외형의 문양을 말하고, 質은 본질로 내면의 내용을 말하며, 彬彬이란 문양과 본질이 잘 어우러지는 것을 말한다. 즉 세련된 매너와 격에 맞는 언어, 그리고 엄숙하고 의젓한 자세 등과 순수한 의도와 신의, 그리고 변치 않는 절개 등이 잘 어우러져야 모름지기 진정한 군자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다가오는 각종 선거판에서는 사실과 다른 말로 현혹하는 저런 무리들에게 다시는 속지 말아야 할 터인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