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금 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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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봉. 환경운동가/수필가

일가 어른이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으로 급히 달려갔다. 촌수로는 9촌이지만 친족이 없는 손이 귀한 집안 내력으로 삼촌처럼 생각해 온 사이다. 지난날 다정하게 대해 주셨던 고인을 생각하며 조문했다. 많은 사람이 오간다. 찾아오는 사람마다 부조 봉투를 주고, 상주는 답례품을 건네며 고마워한다.

식사하며 옆자리에서 하는 말을 귀동냥했다. 부조금에 대한 의견들이 많기도 하다. 상갓집을 찾을 때는 받은 부조금을 떠올리며 넣고, 오래전에 받았다면 이자나 환율 가치를 얼마간 더하여 넣는다고 한다. 동네 부조금은 3만 원이 최저이고 보통 5만 원을 담는다고 하는데, 친분이 두터우면 10만 원은 담아야 한단다. 농촌 살림살이로는 적은 금액이 아니라며 부조금 때문에 등 터진다고 모두 이구동성이다.

결혼식에는 사정이 또 다르다. 1인 만원을 조금 웃도는 장례식장 음식에 비하여 비싼 음식값 때문에 적은 부조금을 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호텔 예식장을 빌려 결혼식을 올리는 비율이 높아지면서 음식값이 수만 원을 넘어가니 5만 원 내미는 손이 미안하고, 친인척 관계가 되면 부부가 참석해야 하는 일이 많으므로 따로 10만 원씩 넣어도 표가 안 난다며 정색한다. 수입이 많은 사람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수입이 별로 없는 사람은 빚으로 남는다며 한숨이다.

지인 중에 호텔 임원이 있다. 그가 하는 말이다. “요즘은 호텔마다 객실 수익보다 고수익이 발생하는 결혼식 피로연을 유치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칩니다.”

부조금이 원래 취지와는 달리 어긋나게 흘러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런데도 체면치레로 어물쩍 넘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예부터 일가가 상을 당하면 급히 고적을 내어 도움을 주어 왔다. 친족이 내는 쌀로 밥을 지어 상주, 동네 사람들, 상여꾼, 상토꾼, 멀리서 부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사람에게 음식을 대접했다. 동네 사람도 쌀 부조와 함께 자연스레 밥 짓는 사람, 전을 부치는 사람, 그릇 씻는 사람 등 자발적으로 나서서 도움을 주었다. 청소년을 비롯하여 아이들까지도 음식을 나르고 심부름하며 수눌음을 배워 온 것이다.

지금은 수눌음이 거의 사라지고 업체와 계약하여 처리한다. 친인척도, 동네 사람들도, 아이들도 손님일 뿐이다. 일손을 돕는 대신 손님으로 참석하게 되자 돈 봉투를 두툼하게 준비해야 하고 도를 넘은 부조금은 우리의 전통을 더욱 퇴색시키고 있다. 결국 부조금을 거둬 가는 곳은 사업장이나 다름없고, 오늘도 장례식장과 호텔 주차장은 차 댈 곳 없이 북적거린다.

김영란법이 실행 중이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던 고급 음식점도 문을 닫거나 업종을 변경했다. 일반인이 주고받는 부조금법도 더 얹었으면 좋겠다. 허례허식을 부추겨 낭비와 과소비로 환경이 파괴되고, 집 밥을 멀리하는 결과를 만드는 데 한몫을 하고 있지 않은가. 부실한 재료와 식품첨가물 섭취로 신종 질병이 우리를 위협하고 잘못된 먹을거리에 의한 암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소중한 우리의 전통이 돈벌이 수단이 돼서도 안 되고, 이런 모순이 자식 대까지 대물림돼서는 더욱 안 된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소비가 위축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부조리한 면을 없앴으니 당연한 일을 가지고 새삼스럽게 떠들고 있다.

결혼식을 올리는 계절이 시작이다. 우리가 스스로 눈을 돌려 옳게 바라봐야 한다. 당장은 힘들고 번거롭더라도 옛 전통을 살리면서 경제, 건강, 환경, 화합을 충족시키는 결과를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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