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 위치한 산새미오름은 오름에 ‘샘’이 있다하여 이름 붙여졌다. 사진은 오름 입구에 자리한 샘과 오름 전경.

이름이 예쁜 오름, 산새미오름.


제주의 360여 개 오름 중에는 ‘새미’라는 이름이 붙은 오름이 많다. 오름 어디엔가 샘(제주어로 새미)이 있어 붙여진 오름이다.


번영로 인근의 새미오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의 거슨새미오름, 제주시 아라동의 새미오름(삼의악·三義岳) 등.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 위치한 산새미오름 역시 오름 산체가 샘을 품고 있어 산새미오름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산새미에서 ‘산’은 산(山)의 뜻이 아니라 ‘살아있는’의 뜻이라고 한다.


오름 입구 안내표지석은 “산세미오름(活川岳) … 오름 남서쪽에 샘이 있는데, 생수(生水), 끊임없이 솟아나는 세미(세미는 샘의 제주어) 있는데서 산세미오름(活川岳)이라 하였다. 북쪽으로 벌어져서 약간 패어 내린 말발굽형 화구를 가진 이 오름은 북쪽에서 볼 때 세 봉우리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인다. 이로 인해서 삼심봉(三心峰) 또는 산심봉(山心峰)이라 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 표지석에서 ‘세미’는 ‘새미’를 잘못 표기된 것 같고, ‘산’의 뜻이 ‘山’ 인지 ‘活’ 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 오름이 있고 그 오름을 오를 수 있어 좋다는 것이다.


산새미오름은 1100도로 어승생 삼거리에서 평화로 방면으로 5㎞ 정도 가면 오른쪽에 오름을 알리는 큰 표지석이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오름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이 오름 이름의 근원이 된 샘이다.


샘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크다. 도내 마을 곳곳에 산재한 웬만한 연못보다도 넓다.


샘 곳곳에 자리 잡은 수초들이 아직 초록의 옷을 갈아입지 못해 수생생물들의 활동을 보지 못했지만 초록이 무성할 때 이 샘에서 ‘무언가’를 낚고 채취하는 방문객들의 모습을 간혹 찾아볼 수 있다.


이 오름은 사람이 팔을 벌린 것처럼 말발굽형 화구를 가지고 있는데 오름 정면에는 가족공동묘지 등 온갖 형태의 묘지들이 오름의 품에 안겨있는 모습이다.


묘지 사이를 지나 소나무숲속으로 정상을 향해 걷다보니 누군가가 나뭇가지에 메어 놓은 탐방로 시그널(리본)이 눈에 들어와 그 곳으로 진입을 시작했다.


먼저 이 곳을 다녀간 오르미들의 발 흔적을 찾아 오르다보니 흔적도 찾지 못하고, 시그널도 사라지고.


하지만 그리 높지 않고, 길을 잃을 염려가 없기에 우거진 숲 사이로 보이는 능선을 향해 오르고, 정상 능선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다보면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정상에 닿는다.


오름 하단부가 망자들의 휴식처인 묘지가 많은 것처럼 정상부에도 여러 모양의 묘지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소나무 숲에 가려있어 정상에서의 주변 조망은 그리 좋지 않다.


하지만 이 오름에서는 과거에서부터 현대까지의 묘지형태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정상부에는 넓은 산담, 동자석과 망주석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꽤 권세 있는 집안의 것으로 보이는 묘지를 비롯해 묘지와 산담이 외담으로 쌓여 있는 묘지, 봉분 주변이 돌로 쌓여 여간해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석관묘들도 있다.


오름 하단에는 봉분 없이 비석만 있는 현대식 가족묘지에서부터 과거 묘지를 그대로 옮겨온 공동묘지 등 온갖 형태의 묘지들이 산새미오름 품안에 있다.


정상부에서 왔던 길로 되 돌아 오기보다는 길은 없지만 수풀을 헤치며 맞은편으로 내려가면 드넓게 펼쳐진 목장지대가 나타나는데 그 넓이 만큼이나 마음이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목장 길을 따라 출발지 방향으로 발길을 돌려 걷다보면 처음 방문객을 반겼던 연못 옆에 어른 키보다 높은 커다란 비석이 있다.


‘고려충신김수장군유적비(高麗忠臣金須將軍遺蹟碑)’.


김수 장군은 고려말 삼별초란(1271년) 때 관군(官軍)의 부장으로 제주에 건너와 삼별초와 전투를 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당시 이곳에 진영을 꾸리고 이 물을 식수로 이용했다고 전해지면서 이 샘을 ‘진수못’이라고도 불린다.
조문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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