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사자와 죽음
저승사자와 죽음
  • 제주신보
  • 승인 2017.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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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명상가

임사체험을 통해 죽음 이후에 세계를 보고 왔다는 이들의 느낀 점을 들어보면 강을 건너고 터널을 통과 한 후에 누군가에 이끌려 알 수 없는 곳으로 가다가 왔다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만든 허상일 것이다. 그리고 저승사자가 갓 쓰고 도포 입은 모습이라면 우리야 이해할 수도 있지만 특히 서양인들은 이 낯선 이의 방문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죽음을 목전에 두신 분들의 한결같은 답은 생전에 가장 친했던 인연이 온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볼 때 저승사자와 마주한다는 것은 공포의 대상이 아닌 반갑고 따뜻한 재회일수도 있다. 그리고 편안하고 행복하니 이 순간을 혼자 있게 해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한다.


흔히 누군가 삶을 마감 했을 때 ‘돌아가셨다’라는 표현을 쓴다. 어디로 갔다는 것일까? 이런 물음에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에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짐작을 해본다. 나이가 어릴 때는 어디에 가든 누군가와 동행을 한다. 등하교를 예를 들면 저학년일 경우에는 부모나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고학년이 되면 그럴 필요가 없다. 굳이 차이를 두기 어렵지만 영혼에도 이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성숙한 영혼이라면 스스로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외국에 나가보면 효도 관광으로 오신 어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바쁜 일정에 쫓겨 호사가 아닌 고역에 가까운 고생길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다가 귀국 날 아침에는 누가 깨우지 않아도 활기차고 바쁜 일정을 보내신다. 비행기가 공항에 도착하면 기쁜 미소가 그려지며 언제나 같을 것 같던 풍경은 세상 이보다 아름다울 수가 없다. 그리고 마침내 집에 도착해서 누우면 이게 천국이구나 하는 황홀함에 빠져들 것이나, 이것이 죽음이다.


태어나서 죽는 순간의 과정에 있어 분명한 것은 빚진 것을 갚거나 미처 하지 못했던 것들을 마무리까지야 아니지만 소기의 성과를 이루려고 이 반갑지 않은 소풍을 한다는 것이다. 죽은 이들과 대화를 해보면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안아주지 못했을 때가 가장 후회가 된다고 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착하게 살아야하며 남을 위한 희생을 하라고. 보이지도 듣지 못하겠지만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자. 그리고 반성하자. 이 소중한 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