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調和)를 지향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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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언. 전 중등교장/시인

며칠 내린 봄비에 대지의 숨결이 한결 싱싱하다. 온갖 생명체가 겨우내 사유했던 삶의 행로를 벌써 저만치 내딛고 있다. 처연하게 수행하던 나목들도 움을 틔우고, 누런 잔디도 푸른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뜰에는 매화에 뒤이어 하얀 자두꽃이 소박한 웃음을 선사한다. 노란 수선화와 분홍 오랑캐꽃도 눈길을 당긴다. 존재를 숨겼던 작약도 한 뼘 이상 줄기를 키웠다.

계절은 독특한 특성을 지닌다. 봄은 생기를 돋우고 희망을 불러낸다. 나는 가슴을 펴 심호흡을 하고 멀리 시선을 보낸다. 한라산 잔설이 녹는 소리, 오름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망망대해의 물결 율동에 빠져든다. 계절의 순환은 시간이 빚는 조화이며, 그래서 아름답고 벅차다.

얼마 전 한 신문 칼럼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었다. 정치의 논리는 권력이고 경제의 논리는 이익이라면, 문화의 논리는 조화라고 한다. 서로 다른 음높이들이 모여 화음을 이루고, 여러 색깔들이 모여 그림이 완성되며, 좋고 나쁜 성격들이 존재할 때 극적 완성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사방을 둘러본다. 만물이 모두 어우러져 있다. 그 속에 나도 단순히 한 존재일 뿐이다. 다른 것들을 탐하거나 멸하지 않고 서로 균형을 유지할 때 건강히 생존할 수 있다. 존재하는 것들은 그 자체만으로 충분한 본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전에 치통으로 사흘간 치과에 드나들었다. 스케일링과 치석 제거를 하고 파인 이빨을 땜질했다. 치통이 사라지더니 왼쪽 귀밑에 간헐적으로 심한 통증이 일었다. 귀에 문제가 있나 해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여기저기 살펴본 의사는 삼차신경통인 듯하다면서 삼일 분의 약을 처방해 주었다. 약을 먹으니 평일보다 훨씬 오래 잠을 자도 졸리고, 머리는 혼미해졌다. 이틀 후에 울렁거리는 열이 두피를 들어 올리는 기분이었고, 뒷머리는 터질 듯 쿵쾅거렸다. 건강이 무너지는 신호였다. 얼른 혈당을 검사하니 정상이어서, 혈압에 문제가 있음을 직감했다. 내과로 달려가 혈압을 재니 예상대로 높은 수치였다. 또 삼일간 약을 처방받았다. 무너지는 도미노 현상처럼 악순환이었다. 몸속의 조화가 파괴된 탓이다.

이제 장미대선이 멀지 않았다. 언론매체들은 예비 대선주자들에 대해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혹자들은 정책을 검증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나에겐 감흥이 일지 않는다. 왜 나는 정치에 부정적 시선으로 무관심해지려는 것일까. 수많은 정치인들이 존재했고 지금도 활동하고 있지만, 사랑하고 존경할 만한 사람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늘 당리당략을 앞세웠고, 자신은 정의요 상대는 불의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몰입돼, 사회를 갈가리 찢어 놓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정치에 완전히 무관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 하지 않는가. 투표는 권리요 의무라는 생각에, 이제까지 총선이나 대선에 불참한 적이 없다. 최선이 없으면 차선을 선택하는 것이 순리다. 입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다시 살펴본다. 그들은 무엇을 지향하고 어떤 언행을 보여 왔으며, 그들이 속한 당은 어떤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가. 누가 포퓰리즘을 늘어놓고, 누가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가. 누가 패거리를 조장하고 누가 협치와 통합의 정치를 구현하려 하는가.

절망과 불신의 골을 메우고,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선출되기를 고대한다. 여러 집단과 세력이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모두를 아우르는 정치를 펼치게 되기를 희망한다.

이른 아침 벌 한 마리가 분재에서 피어난 명자꽃을 드나들고 있다. 제 일을 하는 것이 조화의 실체라고 설하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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