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언어 시엉~셔

                                                       -이 문 호

 

훠이~ 훠이~

삼밭구석 무등이왓

동광벵디

한바퀴 휘 돌아오는

바람은

 

400고지 도너리오름 발 큰 넓궤 앞에 들러

임자...셔

지슬 먹엄쑤다

오늘 무슨날이우꽈

난장, 난장 바람난장 날이우다

경허민, 내 말 들어봅서

 

1948년 11월부터 무등이왓 사람 120여명이

죄도 없이 큰 넓궤로 숨었수다

낮이나 밤이나 큰 기침 못하고, 곶자왈 돌혹 물 먹고,

불을 피울 수가 없어 마른 쇠똥으로 지슬 삶아 먹으면서도

두 달을 겨우 버티어십주

그러다가 쫒기는 몸들이 되어 정방폭포에서 총소리 들은 게 섣달 스무날

할으방하고 나도 오름 바람이 되브러서마씸.

그날 바람도 오늘 바람처럼 꼭같이 시엉~셔

 

바람은 도너리오름, 광챙이 남송이오름 넘어

큰 넓궤 앞에서 다시 묻는다

시엉~셔

시엉~셔

시엉~셔

   
▲ 홍진숙 作 무등이왓 잠복학살터에서.

이맘때 오는 비는 4·3의 비, 이맘때 덮이는 안개는 4·3의 안개, 이맘때 들리는 도글락 소리는 4·3의 제상 멧밥에 숟가락 꽂히는 소리.

 

겨우내 남아있던 동백 흐득흐득 모조리 떨어지고 피다 만 들무 꽃이 두려운 노여움에 꺾어져 버리는 4·3.

 

거짓말 같은 세월이 흘러 올해로 69주년이 되었다. “4·3의 훈풍! 한반도로 세계로”라는 슬로건 아래 우리는 무등이 왓을 찾았다.

 

   
▲ 이정순 제주오카리나 협회 회장의 오카리나 연주 모습.

마을의 형세가 춤을 추는 어린아이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무등동.

 

이곳에 130여 가구가 살았다 한다.

 

중산간 마을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거침없고 넓은 길의 초입부터 시작된 대나무가 예전 집터 경계마다 수북수북 한 것이 한눈에 봐도 그 규모와 마을의 모양새가 어림짐작이 된다.

 

   
▲ 박연술 한국무용가의 위로 공연 모습.

1948년 11월 15일 무장대 토벌 작전을 수행하러 온 토벌대들이 산간마을을 비우고 해안지역으로 내려가라는 소개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마을주민 10여 명을 불러다 구타하고 사살한 ‘최초학살터’를 시작으로 빨갱이로 몰아 마을을 전소시켜 40~50일 뒤 큰 넓궤에 숨어 살던 주민들까지 찾아내 총살하거나 정방폭포에서 희생시켰다. 동광리 마을 전체 160여명의 희생자 중 백여 명이 무등이왓 주민이었다. 영화 ‘지슬’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주민들이다.

 

한때 동광리 5개 부락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교육열이 높아 1930년 개량서당인 광신사숙이 1939년 2년제인 동광간이학교로 개편될 만큼 지역 인재를 양성시키던 곳이다.

 

바람난장은 광신사숙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조금 들어와 ‘잠복학살터’에 자리를 폈다.

 

1948년 12월 12일 토벌대들이 전날 학살한 양민들의 시신을 수습하려고 일가친척들이 올 것을 예상해서 마치 전술 훈련하듯 시신 주변에 잠복했다가 시신을 수습하러 온 일가족 10여 명을 위협하여 짚더미와 멍석을 쌓아 산채로 불을 지른 곳이다.

 

   
▲ 김정희 시낭송가의 시 낭송 모습.

거기서 살아남은 한 할머니는 돼지집에 숨어서 불에 타 죽는 자식을 바라보아야만 했던 그날의 참상을 맷돌을 갈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노래했다.

 

‘난 돼지 집에 숨언 살아나수다. 살려줍서, 살려줍서 허는 애기 놔두고 나만 혼자 살아나수다’

 

살 떨리는 그날의 비명이 만져질 듯 아슬하다.

 

신선순 동광리사무장님의 안내로 잠복학살터 너른 밭에 자리를 핀 난장팀은 동광리 출신인 이문호 교수님의 “바람의 언어 시엉~셔”를 김정희 님의 슴벅한 목소리로 낭송하면서 시작되었다.

 

아까부터 입가에 엷은 미소만 띠던 이정순 제주오카리나 협회 회장님이 4·3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마음으로 직접 작곡한 ‘달빛 물안개’라는 곡을 들려드리겠다 하니 그 음악에 맞춰 박연술 한국무용가가 영혼을 위로하는 무용을 콜라보레이션 하겠다 제안해서 즉석에서 공연이 이루어졌다.

 

한 음, 한 음 들리는 오카리나 선율에 이쪽저쪽 대숲에서 동박새 소리가 화살 쏘듯 날아든다.

 

차가운 땅 위를 나는 듯 걷는 박연술 님의 맨발이 막 물에서 올라온 물새떼 발바닥 같다.

 

손끝, 눈빛 끝, 머리카락 끝에서조차 투명한 물안개가 핀다.

 

안녕, 안녕 손 흔들며 한 걸음 한 걸음 떠나가는 눈물 너머의 그 무엇이 만져질 듯 아슬하다.

 

애월고등학교 학생들이 마을을 바로 알고 4·3을 잊지 않기 위해 들렸다며 선생님을 앞세우고 한 바퀴 돌아나간다.

 

이제 이 땅에서 이런 아픔이 더 이상 없기를, 저 아이들이 역사를 기억하고 보듬어 안을 수 있기를.

 

오늘 우리의 묵념이 영혼에 작은 위안이 되셨기를.

 

부디 편안하시기를.

 

 

 

글=강영란

사진=허영숙

음향=이상철

시낭송=김정희

오카리나=이정순 제주오카리나 협회 회장

무용=박연술

안내=신선순 동광리사무장

그림=홍진숙

참석자=이지엽교수님, 문순자, 고해자, 양승보, 이경훈

 

※다음 바람난장은 4월 1일 천년의 섬 ‘비양도’에서 진행된다.

참석하실 분들은 8시까지 신분증을 지참하고 한림항으로 오면 된다.